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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 반납 대신 갱신을 선택했다.

사람사이. 운전면허 시험장

by 샤이니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강서 면허 시험장을 방문했다. 연초에 갱신기간이라는 문자 확인 후 계속 미뤄 왔던 일이다.


내가 신경 쓰고 있어서인지 유독 매스컴에서 고령자 실수로 대형 교통사고가 사망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며 논란이 많다. 나는 아직 해당사항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사회에서 인정하는 고령자가 맞다.


인터넷으로 갱신해보려 했는데 1급 면허증을 2급 보통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면허시험장 방문해서 체력검사를 다시 해야 가능하단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시력이 나빠졌다는데.

이번 기회에 반납을 해야 할까? 갱신하고 몇 년 더 해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텃밭에 농사짓기 위해 다니려면 자동차는 필수다. 몇 년만 더 ~


예전에 면허증 취득하고 기뻐하며 축하 파티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한 분뿐인 형부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밥을 사주고 축하해 줬다. 지금이야 수능시험 끝나면 당연히 취득해야 할 필수코스로 여기지만,

1970년~1980년대에는 운전면허증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여자들은.


결혼 1년 만에 이름도 생소한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라는 산골로 이사를 갔다. 유일한 교통수단인 버스도 하루에 몇 번. 그것도 오후 5시면 끊긴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오지에 묻혀 아들 딸 키우며 살다가 8년 만에 고향으로 이사를 나왔다. 딴 세상이 펼쳐젔다.


차도 많고 애들이 좋아하는 중국집도 있고, 특히 취학을 앞둔 아들 딸이 다닐 수 있는 학원들도 있다. 양가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그때부터 나의 음식 배달이 시작됐다. 친정으로 시댁으로 무거운 김치통과 반찬들을 들고 버스 타고,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양쪽 팔이 남아나질 않았다. 어쩌다 가끔 자가용을 운전하는 여자들이 보이는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남들도 다 하는데 해보자. 나도 용기를 내서 운전면허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음날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하고 필기시험 책을 구입해 일주일을 밤낮없이 달달 외웠다. 살림하고 애들만 키우던 사람이 교통법규를, 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단어들, 공부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면허 시험장에 필기시험을 보기 위한 인원이 150명이었다. 필기시험 합격자는 78명,

합격자는 당일날 바로 코스 시험을 봤다. 최종 합격자는 남자 5명, 여자 2명인데 그중에 내 이름이 포함이다. 하루에 필기, 코스 모두 합격한 거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름이 좋아선지 2명의 여자 이름이 선희였다.





남편은 면허증을 기 쓰고 딴 이유를 알기에 도로연수 3일 만에 새 차를 구입해 줬다.

신나고 고마웠지만 처음 잡아본 운전대는 팔다리가 후들후들 너무도 무섭고 겁이 났다. 하지만 오기 하나로 열심히 노력했기에 무사고 36년째다.


평생 무사고 운전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면 없어서는 안 될 자격증, 4도 3촌을 위해서도 있어야만 한다.


솔직히 가까운 거리 한 시간 정도 운전은 무리가 아닌데 그 이상의 거리는 조금 버겁긴 하다. 힘이 들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장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근교 가까운 거리만 운전대를 잡기로 하자.


전국 노인회장님이 건의한 고령자의 기준까지만 운전하고 반납하는 거로,

그때까지 무사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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