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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나들이.

사람사이. 조계사에서.

by 샤이니


여름 끝자락에 스치는 바람결이 민소매 어깨에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25년도를 본의 아니게 환자로 살면서 시간을 보낸 게 너무 아쉽다. 여행도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모든 일에 제약을 받는다 생각하니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 오랜만에 인사동길 나들이를 나왔다. 인파에 떠밀려 다녔던 인사동길이 월요일이어서인지 아님 경기가 나빠서인지 외국인도 내국인도 한산하기만 하다. 한적한 거리를 걷고 구경하기는 좋았지만 그래도 인사동은 복잡해야 제 맛일 듯.


이름도 생소한 12가지 강경젓갈을 기본으로 하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젓갈이 주인공인 한정식집은 처음이기에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젓갈이라는 개념은 짜다가 정석인데 완전히 생각을 바꿔줬다. 짜지 않아 좋았다. 수육에 여러 종류의 젓갈을 바꿔가며 쌈 싸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젓갈을 넣고 밥을 참기름에 비벼 쌈을 싸 먹어도 좋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조계사였다. 근교 조계사를 방문하기 위해 걷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무료 미술 전시관을 관람했다. 엄청난 대가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뒤늦게 그림에 입문한 내 입장에선 모든 게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이곳 또한 너무 한가하다.





조계사에 도착하니 입구에 축제가 끝난 연잎들이 반겨준다. 연꽃방죽이 아닌 대형화분에 심어진 연꽃들은 거의 다 져버리고, 어쩌다 한 개씩 피어있는 꽃을 볼 수 있는 행운이 따라 줬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아주 잘자라 키가 큰 칸나꽃들이

서로의 세련됨과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전원생활하는 친구집에서도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 칸나꽃에 반해 우리도 내년에는 잊지 말고 모종을 사다 심자 했는데 다시 보니 내년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또 볼 줄은 몰랐는데 마음만 급해진다.


경내에 들어서니 도심 속에 자리한 사찰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참 많이 보였다.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은 대웅전 앞에 그늘막을 치고 부처님을 향해 의자를 배치해 잠시 묵상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둔 점이다.


우리도 잠깐 그곳에 앉아 있는데 마음이 차분해진다. 연인끼리 혹은 부부동반, 외국인 관광객들까지도 누가 먼 저랄 거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경건해지는 공간이었다.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우리는 천주교 세례명을 갖고 있지만 부처님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급변해진 날씨 탓에 어슴프레 해가지니 바로 서늘함을 느끼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우리도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직장인들 퇴근시간 전에 지하철울 탔어야 하는데 복잡한 시간에 맞물려 버렸다.


법적 무임승차를 하기에 될 수 있는 한 출퇴근 시간을 피하려 노력하는데 오늘은 조계사 분위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어졌다. 하루 종일 바쁜 일과 후 퇴근길에 자리 없이 서있으며 축 쳐져 지친 모습들이다. 경로석이라며 비워두고 있는 젊은이들을 삐집고 들어가 비워둔 자리에 앉을라치면 얼굴 들기가 민망하다. 미안한 마음에 잠깐 앉아있다가 자리를 비켜줘도 될 텐데 하며 권해보지만 다들 "괜찮아요." 한다.


아직까진 이런 젊은이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유지되고 살만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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