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도 3촌. 수박농사
수박을 심고 수확할 때마다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처럼 여행이 활성화될 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잘살지 못했고, 요즘 학생들처럼 현장학습이란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공부만 하던 미혼인 시동생과 함께 여행길에 나선 차 안에서의 대화였다. 전라북도 고창을 지나가던 때에 "형수님! 수박이 땅에서 자라나요? 나무에서 열리는 거 아닌가요? 처음 봐요." 하며 너무도 신기해한다. 나도 순간 땅에 매달려 있는 수박을 본 적은 없었던 거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밭에서 나오지요! 그리고 고창이 수박 고장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여 줬다. 매스컴에서 보고 들었던 상식이었다.
재래시장에 가면 좌대에 쌓여있는 수박이나 마트에서 파는 수박만 봐왔기에 교과서로 배웠는지도 기억에는 없었다.
그걸 보면서 최고 학벌이며 박사논문 준비하는 사람도 한 분야만 파고드느라 다른 데에는 아예 문외한일수 있구나를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니 다방면으로 지식을 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당시 시동생은 전공분야 학위에 몰두해 도서관에만 파묻혀 생활하던 시기였다.
그 이후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했다. 대한민국 역사학자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인재지만 나에게는 아직까지 수박사건이 남아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이 금년 농사 모종을 심는 시기였다. 올해는 농사 포기하자 했는데, 애들이 5월 초 연휴에 모종 몇 개씩만 사다 저희가 심어 볼게요! 한다. 그야말로 어렸을 적 불렀던 개구리 동요 가사가 생각나는 아들, 손녀, 며느리, 딸까지 총동원되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비닐멀칭까지 흉내 내가며 종류별로 몇 개씩 심어놓은 것 중에 수박모종 3개도 포함이다.
애들이 엄마 아빠를 위해 심어준 정성을 배신하지 않고 잘 자라 줬다. 올해는 유난히 수박값도 비싼데 7k로가 넘는 수박을 애들도 2통 따서 가져가고 우리도 3통째 따서 먹고 있는데 밭에 가면 아직도 커가고 있는 수박 열매가 5통이 대기 중이다. "안 먹고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듯이 쳐다보고 있으면 우리가 키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뿌듯하고 대견하다. 매년 심어봤지만 올해처럼 크기도 크고, 달고 맛있는 수박을 수확하기는 처음이다. 전문 농사꾼이 수확한 거 부럽지 않다.
밭에서 바로 따 먹는 새빨간 수박 맛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뭐라 표현을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감탄만 연발하는 딸에게 싱그러운 맛이지? 하니까 맞아 그 표현이 딱이네! 한다. 이맛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맛은 농사지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수박은 버릴 게 없다. 수박씨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호박씨처럼 볶아서 먹거나 가루를 만들어 차로 우려 마셔도 좋다. 아니면 보리차처럼 끊여 먹어도 된다. 껍질에도 과육보다 2배나 많은 영양소와 수분, 식이섬유가 많아 이뇨작용과 혈관건강에도 효과가 있다니, 조금 귀찮아도 수박껍질 먹어보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저녁에는 오이무침 대신 소금에 절여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예술인 수박껍질 무침을 만들어 먹자.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일석이조다.
수박껍질 무침 만들기.
1) 수박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다.
2) 절여진 수박을 짜준 후,
3)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청, 마늘, 식초, 참깨로 버무려줌. (쪽파나 부추, 청양고추는 집에 남아있는 재료 아무거나 사용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