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 속의 아픔과 절망, 모든 것을 뛰어넘은 서스펜스, 그 잔잔한 슬픔의 이야기.
나라의 기둥이 기울어져 가는 소리, 먼바다에서 들려오는 함포의 굉음이 겹쳐지던 시절.
미스터 선샤인은 그 아픈 역사의 결을 배경으로, 한민족의 혼을 가장 깊고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드라마 속에는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치는 사람들,
조국의 무너짐에 원통해 끝까지 지키려 총을 드는 사람,
기회에 편승하는 부역 하며 버티는 사람,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일어서는 민초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칼을 쥔 손에는 사연이 있었고, 사탕 하나에도 눈물 섞인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 컷 한 컷 혼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거기에 깔리는 음악.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숨어있는 가슴 아픈 인간의 슬픈 이야기들.
이 작은 나라에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숨겨진 장소들이 많이 있다는 것.
그 장소 장면들을 순간의 영상미로 뿜어내는 기술들...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속 연기와 장면에 투영된 금수강.
이런 멋진 영상미를 간직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옷깃 하나에 깃든 깊은 가슴속의 그리움과
사탕 하나에 사랑의 달콤함으로 그려내는 이야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단어와 배경, 연기를 총체적으로 엮어낸 수작이다.
그 시대는 신분의 차이가 분명한 사회.
주인과 종의 신분을 나뉜 계급의 사회였고 그 계급에 따라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시대였다.
"복에 겨운 계집'이란 한마디에 평생을 가슴 아파하는 뱉은 사람과 들은 사람.
신분을 뛰어넘은 순애보의 가슴에 숨겨진 아픈 이야기들.
이런 역사 속에 피고 지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엮어 만든 예술작품.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고애신. 조선의 딸이자, 양반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나 기품을 품었지만, 총을 들면 누구보다 단호해지는 의병이었다.
고애신,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가 있었다.
고애신
총을 든 '불꽃' 같은 여인. 고고한 양반가 자제이지만, 조국을 위해 기꺼이 의병의 길을 택한 그녀.
그녀의 단단한 눈빛은 무너져가는 조국을 지키려 했던 민초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상징한다.
유진 초이
어린 시절 노비로 태어나 부모의 비극을 눈으로 목격한 아픔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가 군인이 되어 돌아온 남자.
그의 사랑은 조용했지만 깊었고, 애신 앞에서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서며 길을 비켰다.
그의 눈빛 속에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할 수 없다’는 운명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구동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에서 버림받고, 일본 땅에서 칼잡이가 되어 돌아온 남자.
그의 사랑은 거칠고도 직설적이었다.
누구도 애신을 해치지 못하게 막아섰지만, 자신이 가진 신분과 어두운 과거가 늘 벽이 되어 가로막았다.
김희성.
양반 가문의 도련님으로, 웃음을 잃지 않는 유쾌한 기질 속에 깊은 슬픔을 숨긴 남자.
그의 사랑은 해학과 자존심이 버무려진 것이었다.
운명처럼 정해진 뒤늦게 약혼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서로의 자유를 빼앗지 않기를 바랐다.
그 세 남자의 브로맨스는 드라마의 빠져드는 또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 여인을 놓고 벌이는 각자의 다는 감성 속에서 피어나는 숨어있는 우정.
세 남자의 사랑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애신의 선택과 길을 존중했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녀가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 시대, 사랑은 곧 생존이었고, 생존은 곧 저항이었다.
미스터 선샤인은 한 여인과 세 남자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 부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까지,
모든 인간 군상이 이 드라마 속에 살아 움직였다.
그 속에는 ‘한민족의 혼’이 있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부서지고 찢겨도,
끝내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기개.
그것은 애신의 총에도, 유진의 침묵에도, 동매의 칼에도, 희성의 미소에도 깃들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남은 등장인물은 호텔 '글로리'사장 쿠도히나(한국명 이양화) 역이었다.
김민정이라는 연기파 배우의 절제된 표현의 연기, 그 슬픈 미속 속엔 비수를 감추었고 한 순간에 폭발해 조국을 위해 몸을 던졌다.
주인공 모두가 가슴에 맺힌 슬픈 이야기를 안고 있었지만
쿠도히나는 국가를 배신한 아버지에 대한 슬픈 복수를 지켜보는 역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낸 김은숙 작가의 대사는, 한 줄 한 줄이 '소풍'같은 시(詩)였다.
말맛이 살아 있었고, 장면과 장면은 영화처럼 빛났다.
이응복 감독의 연출은 미장센 하나까지도 예술이었으며, 음악은 감정을 넘어 영혼을 흔들었다.
그 결과, 미스터 선샤인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를 예술로 되살린 한 편의 대서사시가 되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아 왔지만,
보고 또 보고, 다시 들여다봐도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이 이렇게 많은 작품은 드물다.
그 안에는 시대의 눈물, 사람의 숨결, 그리고 꺾이지 않는 혼이 있다.
다시 이런 명작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미스터 선샤인은 한 시대와 한민족, 그리고 남녀 주인공들의 모든 이야기를 한 편에 담아낸,
다시없을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선샤인'은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신분제도와 외세의 침략 속에서 흔들리는 조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민초의 희생을 조명했다.
'살아남는 것이 곧 저항'이었던 그들의 삶을 통해, 이 드라마는 단순히 역사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한민족의 혼'이 무엇인지 되묻는 깊은 메시지를 남겼다.
'미스터 선샤인'이 우리에게 또 나에게 남긴 여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