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이 그린 꽃게와 아이의 이미지
눈이 오면 차가운 이성의 세계가 포근한 감성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한곡을 들으면서 시 한잔 하시지요.
전 영 칠
달 하나가 밤을 열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배춧잎처럼 겹겹이 쌓여 거리와 번화가에서 끝없이 꽃과 나비를 토해내고 있었고, 한 무더기 상한 바람이 김포 활주로를 향해 낮아지는 비행기 동체를 떠안고 있었습니다.
같은 날, 역시 그런 바람이 어느 화가의 화실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전시를 끝내고 주인을 못 만난 100호 유화 한편이 푸석푸석한 시멘트 담가에 엇비슷하게 엇갈리어 함께 서걱거리고 있었고, 화폭 속의 새 다섯 마리 중 두 마리가 촉촉이 황산비에 젖으며 자못 귀촉도의 울음으로 창백해지고 있었으나, 화가는 또 다른 작품에 빠져 그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시의 한 귀퉁이에 떨어진 비짝 마른 가랑잎을 밟으며 기어가는 한 마리의 꽃게와 벌거벗은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십 번 꿈틀거리다가 마침내 예수처럼 자신의 피와 살을 화폭에 짓이겨 발랐습니다. 오전 세시가 되자 화가는 꽃게의 오른쪽 다리 두 개를 마저 그려 넣음으로써 작품을 완성하였고, 붓을 놓고는 만족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꽃게와 아이가 화폭에서 서서히 기어 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꽃게는 아직 뺑소니 운전사의 바퀴자국 지워지지 않은 아스팔트와, 소매치기가 버리고 간 빈 인조가죽 지갑과, 취객이 게워 놓은 시멘트 블록의 오물을 지나, 산책로의 쓰레기 더미와 구겨진 외제 깡통 사이를 어기적어기적 열심히 활보하였습니다.
아이는 깨금질로 고추를 달랑거리며 꽃게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동숭로 한적한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꽃게를 어느 찻집 옆 아스팔트 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붉게 수 놓인 현란한 등무늬의 꽃게와 놀고 있는 벌거벗은 사내아이를 보았습니다. 도시는 그 둘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없이 맑고 깊은 바다 속이라도 된듯함으로 말입니다.
꽃게와 아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고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즐겁게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화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당황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자리에 있어야 할 꽃게와 사내아이는 빈 자국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화가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인생은 때로 불가해한 거야."라고 중얼거렸지요. 화가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꽃게와 벌거벗은 아이를 그려 넣으려고 붓을 들었습니다……
도시. 2026년 1월.
사람들이 열심히 걷고 있다.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사람들 목에 하나씩 멍에를 걸고 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키큰 이든, 키작은 이든 모두가 공통적인 모습들이다. 사람마다 멍에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정말 열심히 걷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눈치 보며 사는 모습을 슬쩍슬쩍 비춘다. 그러면서 자유를 꿈 꾼다.
나도 기꺼이 그들에 동참하고 있다. 나도 목에 멍에를 걸고 있다. 나 역시 자유를 꿈 꾼다.
그에게는 멍에가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의 아이들이 꿈길을 따라 걸어와서 그의 멍에를 벗겨주었다. 이중섭은 고향 송천리와 서귀포에서, 일본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