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또는 눈이 오면 차가운 이성의 세계가 포근한 감성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한곡을 들으면서 시 한잔 하시지요.
(*'근원에 대한 묵상'에 잘못 올린 이 시를 '비오는 날 음악한곡과 시 한잔'으로 다시 옮깁니다. '근원에 대한 묵상'에 올린 시는 잠시 놓아 두었다가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전 영 칠
화가 푸리다와 디에고는 상처와 바람의 부부로 인생을 못에 걸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소금으로 반쯤 죽인 절은 배추에 , 매운 고추 빨갛게 눈알에 비벼주고, 아린 마늘 가슴에 득득 갈아 넣고, 곰삭은 멸치도 함부로 얼굴부터 끼얹고, 시체처럼 쌓아서, 뚜껑닫아 감옥같은 항아리에 쳐넣은 사랑으로~ 그렇게 희로애락의 인생이 통배추처럼 들어가 새콤털털하게 잘 곰삭은 김치 되었으니 그 맛갈을 어찌 잊으랴, 인생은 맛나게 잘 익은 김치일꺼라.
내, 오늘은 쭉 찢은 김치 잎 둘둘 말아, 막걸리에 그 인생 한잔 들이킬 것이다.
윗 글은 유혜성 작가의 '사랑은 왜 반복해서 상처를 선택하는가'를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시로 쓴 거다.
잘 알려진 화가 부부 푸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 푸리다는 교통사고로 난장판된 몸으로 살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그 후에 만난 화가 남편 디에고는 난봉꾼이었다. 그는 푸리다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다. 이혼하고나서 재결합했다. 어떠한 형국도 '이별'은 푸리다에게 최종 도착지가 아니었다.....
인생이 그렇다고 하기엔 또 그렇지 않은 구석이 있고, 인생이 단지 난삽하다고 하기엔 매우 집요, 허수룩 백백이다. 한마디로 평가불가해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부부다. 그 사랑은 무엇일까?
(2026.02.12)
윗 글을 지우면 댓글도 지워져 이곳에 옮깁니다.
유혜성 작가(Feb 13. 2026)
작가님, 제 글에 댓글 남겨주시고 이렇게 다시 글로 이어주셔서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을 김치에 비유하신 부분에서 제가 참 공감 많이 했거든요.
소금에 절이고, 맵고 아리고, 곰삭아야 비로소 제 맛이 나는 과정처럼
그들의 사랑도 상처와 배신, 재결합과 집착이 뒤섞여
결국 하나의 ‘발효된 인생’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별이 최종 도착지가 아니었다는 문장이 오래 남아요.
끝낼 수 없는 관계, 떠나도 다시 돌아가게 되는 끌림.
그것이 사랑인지, 중독인지, 혹은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는 본능인지
읽는 내내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프리다는 부서진 몸으로도 끝내 자신을 그림으로 다시 세웠고,
디에고는 수없이 무너뜨리면서도 그녀를 자신의 세계 중심에 두었지요.
서로에게 상처였지만, 동시에 서로를 증명하는 거울이었던 관계.
그래서 더 쉽게 평가할 수 없고,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고 이렇게 글로 응답해 주셔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오늘은 저도 잘 익은 김치 한 점에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사랑이라는 발효의 시간’에 대해 조용히 묵상해 보고 싶네요.
(안주로 먹을 수 있는 홍어회 선물도 받았어요 ^^)
전영칠 작가(Feb 13. 2026)
한반도에서 전라도 맛이 제일 맛갈납니다. 김치에 홍어회 얹어 막걸리로 들이키는 걸 전라도에서 삼합의 맛이라 하지요. 인연이 있어 전라도에서 10여년 살 때 그맛 종종 봤습니다. 오늘 한잔하면 새해 내내 365일이 평안하실 겁니다.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와 함께 삼합으로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