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음악과 시와 산문
스산한 계절이다. 가을.
가을은 예술가들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물과 자연, 사람들과의 감성적 교류가 민첩해진다.
가을에 글이 잘 써지는 이유는 신경과학, 생리학, 심리학 분야에서 설득력 있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10~18도 전후의 '약간 서늘한' 환경은 뇌 기능을 최고로 발휘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그에 따라 고도의 집중력과 인지 능력이 따라준다. 적절한 온도는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의 균형을 잡아주어 일조량 변화로 인한 '차분하고 내성적인 호르몬 상태를 유지'시켜 준다.
이 가을을 맞아 만남과 청춘, 그리고 이별 시를 한편 드린다.
전 영 칠
기차는 떠나네
마침내 라며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누군가를 태우고 꼬리를 자르며 기차는 마침내 멀어져 가네
11월의 찬바람과 함께
누이가 음악을 눈에 걸고 귀에 걸다가 입술로 먹는다
그러다가 엘피레코드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또다시 음악을 건다
그랬다 그 시대는 자주 혼동처럼 음악을 걸었다
갓 잡은 회처럼 누이는 파닥이며 잘도 웃는다
그녀의 말대로 시시한 것 먹고, 입고, 자고에 웃고
그녀의 말대로 또 다른 시시한 것 사랑, 죽음, 이별 따위라며
웃었다
누이의 웃음은 솜처럼 부드럽고, 개그우먼처럼 명랑하고,
때론 내게 보여준 왼편 손목을 가로지른 선명한 칼자국처럼 우울하고,
날 선 초승달처럼 예민했다
나는 누이를 통해 에릭크립튼의 기타,
우드스탁의 오르가슴과 히피와 열반의 동질성을 배웠다
그런 누이에게 나는 따지듯 왜, 왜, 왜라고 대들었다
촌놈, 왜 사느냐고 묻지 마
왜?
왜 운동권이냐고 묻지 마
왜?
너 자꾸 그러는데 음악이 뭐냐고도 묻지 마
왜?
음악은 그저 느끼는 거야
왜?
그러니깐, 넌 촌놈이지
말 없음······ 그리곤 그녀는 뮤직박스에서 검고 긴 생머리만 까닥 댄다
나는 누이를 듣고 마시러 실없이 홍대 앞을 기웃거렸고
그녀는 그해 11월 실종되었다 아무도 본 사람 ······ 있었을까?
이제와 생각하니 그녀는 음악이었고, 나는 음악의 뮤즈와 연애하고 있었다
지금 홍대 앞 '곱창전골'의 LP레코드는 하나의 기억으로 책장에 꽂혔다
LP레코드의 거리, LP레코드의 문화와 시간들이
기차에 실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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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늘 떠나간다.
한 때의 문화였던 LP레코드와 LP축음기도 기차에 실려간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사연이 있는 음악은 특히 더 그랬다.
한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음악, 연인, 친구, 사랑도 함께 기차에 실렸다.
누이도 갔고, 그들도 갔고, 나도 떠난다.
정착? 글쎄.
DNA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자는 정착이 낯설다.
그러나 함께 했던 기억은 바람 불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음악을 건다.
사연은 ······ 내 깊은 나이테에 이미 금 그어진 것을 안다.
다시 음악이 흐르고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i Stis Okto)'는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하고 마노스 엘레프테리우가 작사한 노래로 특정한 한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는 아니다. 이 노래는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곡으로, 당시 많은 사람이 겪었던 보편적인 아픔과 이별의 실화를 담고 있다. 노래가 만들어진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그리스는 군부 독재 정권(1967~1974) 치하에 있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가사는 독재 정권에 맞서기 위해 떠나는 저항군(레지스탕스) 연인을 떠나보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가였다. 그는 이로 인해 수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으며, 그의 음악은 금지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 삽입되면서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또한, 소프라노 조수미가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