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바람’이라는 동화가 있다. 해와 바람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겉옷을 누가 빨리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했다. 바람이 나그네를 향해 센 바람을 불자 나그네는 옷을 벗기기는커녕 옷깃을 여미기만 했다. 반면, 해가 나그네에게 따뜻한 햇볕을 보내자 나그네는 겉옷을 벗어 버렸다.
우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한다. 몇 년 전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식 선술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선술집의 콘셉트는 일본 현지와 똑같은 이자카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문은 반드시 일본어로 하게 했고, 일본어로 주문하지 않으면 벌금 500원을 내는 것을 규칙으로 했다. 이 가게에서는 일본어를 모르는 손님을 위해 기본 회화를 준비했지만, 비난 여론으로 인해 폐업을 선언했다.
이 가게에서 간과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본어이고 다른 하나는 벌금이다. 만약 일본어가 아니고 영어였다면 반발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폐업으로 이끈 다른 한 가지는 벌금이다. 벌금이나 벌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거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손님이 술집을 찾는 이유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인데 술집에서 정한 일방적인 규칙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통제했기에 반감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상사의 통제는 조직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상사의 통제가 강할수록 부하는 자신의 보호하기에 급급해 수동적으로 변하면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지면서 상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순순히 따르는 부하의 모습을 보면서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하가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순응하는 이유는 상사의 지시가 정당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사랑하거나 월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일 수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선택할 자유를 갈구한다. 죄를 지은 사람을 교도소에 가두는 이유도 선택에 대한 ‘자유’를 박탈해 고통을 주기 위함이다.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면 반항심이 솟아오르면서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상사가 일방적으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거나 저녁에 회식이 있다고 하면 불만을 느끼는 것처럼 일방적인 지시나 통제는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의 자유는 업무성과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조직원이 자발적으로 일할 때와 상사가 시켜서 억지로 일할 때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사람 중에는 조직원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지시하는 방식대로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조직원들은 이런 사람을 관리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관리자’라는 용어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조직원에게 제공하는 선택의 자유는 ‘해’와 같이 마음을 열게 한다. 개도 자신을 통제하는 주인에게 짖거나 무는 등 공격 성향을 보이는 것처럼 조직원은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공격할 준비를 한다. 또한, 상사의 통제는 조직원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여 업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된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상사는 여전히 부하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을 통제하려고 애쓰지만, 상사가 이렇게 애를 써도 조직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상사의 역할은 조직원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이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사는 조직원을 통제하는 대신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질책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해야 한다. 칭찬이나 격려는 해와 같은 긍정의 에너지를, 질책은 바람과 같은 부정의 에너지를 조직원에게 주기 때문이다.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조직원이 부정의 에너지에 둘러싸인 조직원보다 조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상사는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조직원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상사는 조직원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원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업무에 쏟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상사가 조직원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낼수록 조직원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면서 성과를 높인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