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장’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역할이 부여된다.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누구의 아들이나 딸, 누구의 손자나 손녀가 된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가 된다.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와 같은 조직에 몸담게 되는데 이럴 때는 조직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기업에 몸담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등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에 쏟게 된다. 즉, 부모나 자녀 그리고 친구나 동창과 같이 경제 활동과 거리가 먼 순으로 역할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이때 많은 직장인이 간과하는 것이 ‘가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이다.
직장인 중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직장에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할이 ‘가장’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가장(家長)은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과거에는 주로 남자가 경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남편’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재에서는 부부 중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가장의 역할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 지원이다. 둘째, 가족 보호이다. 가장은 가정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신체적인 안전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도 포함된다. 셋째, 정서적 지지이다. 가장은 가족에게 정서적 지지와 안정감을 제공해야 한다. 가족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들어주고, 감정적으로 지지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넷째, 모범적인 언행이다. 가장은 가족의 가치관과 행동 기준을 설명하는 모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자녀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가족 전체의 행동 기준을 설정하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가족 간의 소통을 촉진해야 한다. 가장은 가족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족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갈등이 발생했을 때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역할 외에도 가정마다 다른 가치와 전통에 따른 역할이 존재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가장의 다양한 역할이 직장인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한다. 직장인이 일하는 동안 피곤과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 모두 지치게 된다. 퇴근해 집에 오면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얼굴만 바라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귀엽던 아이도 어느 순간 귀찮은 존재가 된다. 가족과 대화가 줄어들면서 가족으로부터 하숙생이냐는 질문을 받는 횟수가 늘어난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더는 부모로서 자신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직장인은 배우자 혹은 아이들의 요구 사항이 줄어들수록 몸과 마음 모두 편해진다. 가장이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가장은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현금’만 지급하면 되는 현금지급기의 역할에만 머물게 된다.
가장이 현금지급기 역할을 한 기간이 길수록 본래의 ‘가장’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진다.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다양한 역할이 아닌 현금지급기의 역할에만 충실하기 직장에서의 역할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 이렇게 할수록 현금지급기인 가장과 사람인 다른 가족 간에는 정서적으로 연결고리가 사라지게 된다. 문제는 이런 시간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는 60세가 한계이다.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몇 년 더 정년을 연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몇 년뿐이다. 정년을 맞은 직장인이 돌아갈 곳은 현금지급기 역할을 했던 가정이다.
퇴직한 직장인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순간 자신은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하숙생 혹은 현금지급기’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금지급기라는 기계였던 자신이 사람이었던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했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동안 가족에게 무관심했고, 함께 대화할 소재가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가족들과 의사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가족들에게도 직장에서 하던 대로 지시하거나 감정적인 반응과 같은 나쁜 습관을 가족에게 보인다면 가족은 마음의 문을 열기는커녕 ‘그럼 그렇지’라는 확신을 두면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직장인은 항상 자신의 역할은 ‘가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장인이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정서적 안정이다. 가족으로부터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응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화목한 가정에서 출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다. 직장인은 가족의 지지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업무에서의 성취를 높일 수 있다. 둘째, 안식처와 휴식 공간의 확보이다. 가정은 직장인이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쁜 업무와 업무 관련 압박을 받는 직장인들에게 가정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며, 가족과의 소통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일상에서의 피로를 씻어내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셋째, 가정은 사회적 지지망이다. 가정은 직장인에게 중요한 사회적 지지망 역할을 한다. 가족은 직장 내 어려운 상황이나 갈등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지지는 직장인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미래 지향적인 목표 설정이 가능하다. 가정은 직장인의 미래 계획과 목표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녀 교육, 주택 마련, 재정 계획 등 가정과 관련된 목표는 직장인의 경력 목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목표는 직장인의 동기부여를 높이고,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화목한 가정은 직장인에게 큰 힘이 되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된다.
직장인이 가장의 역할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물림’ 때문이다. 대물림은 특정한 사물이나 재산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주로 가족 간의 재산, 유산, 또는 전통적인 기술이나 문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사용된다. 대물림은 가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서적 유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돈과 정서적 유산의 결정적인 차이는 유통기한이다. 정서적 유산은 성장기 아이에게 효과가 가장 높고, 나이가 들수록 효과는 떨어진다. 성장기 아이가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때 자존감이 향상되고 대인관계에서 관계의 질이 높아지며 정서 지능이 발달하면서 개인의 정신 건강과 심리적 웰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정서적 유산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가 가정에 소홀히 하면 이런 중요한 정서적 유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된다.
직장인 중에는 대물림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 정서적 유산보다 물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정서적 유산은 부모의 사랑, 지지, 그리고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정서적 유대감으로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이는 자녀의 정서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 만약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부모가 되었을 때 부모 역할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다. 부모의 사이가 나빠 이혼이라도 하면 많은 희생이 따른다. 가장이 ‘돈을 많이 벌면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라는 왜곡된 믿음이 가족을 불행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가정은 직장인에게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 정체성, 일과 삶의 균형, 미래 지향적인 목표 설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직장인은 가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구축하고, 직장 내에서의 역할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직장인은 ‘가장’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할 때 직장인의 역할도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