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경험한 일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전 부서원이 모여 조회를 했다. 이때 한 부서원이 부서장 앞으로 가더니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절을 하는 이유를 몰라 옆에 있던 선배에게 물어보니 “형님 사업을 돕느라 회사를 그만둔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부서장에게 퇴직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절은 조금 과했지만, 부서장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후에 그 선배가 퇴직 인사로 큰절을 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이직 사실을 숨기려고 형님 사업 핑계를 대면서 큰절을 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직장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그 당시 직장인 대부분은 ‘퇴사는 조직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요되던 시절이라 ‘지금의 직장에서 퇴직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직장을 위해서라면 가정은 희생할 수 있다’라는 인식으로 연결되었다. ‘평생직장’이란 낯선 용어도 이 시절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직장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평생직장이라고 충성을 강요하던 조직에서 갑자기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원하지 않은 퇴직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평생직장은 없다’라는 사실과 조기 퇴직으로 인한 문제점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공무원과 공기업에 취업준비생이 몰리게 되었다.
며칠 전에 공립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사둔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낯선 도서관에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변 사람들 모두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일반 회사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면 정년까지 충분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채용담당자 모두가 한결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한다. 구직자는 아예 중소기업에 가기를 원하지 않아 사람이 없고, 대기업에서는 지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회사에서 찾는 인재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렇게 인재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취업준비생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익 시험이다. 높은 토익 점수를 얻는 방법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실제로 영어를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실력을 늘리는 방법이다. 외국인과 말하거나 시청각 자료를 통해 듣기 능력을 향상하고, 영어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독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습득한 영어 능력은 실제 업무에서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 가지는 학원에서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한 요령을 배우는 것이다. 토익 학원에 등록하는 취업준비생의 목적은 영어 활용 능력보다는 토익 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영어를 준비한 사람은 토익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실제 업무에서는 영어 능력을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100%이다. 이처럼 취업준비생의 스펙만 보고 채용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장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평생직장’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 평생직장을 고수하는 경우 조직과 조직원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조직은 호수와 같다. 호수에 물이 순환되지 않고 고이면 그 물은 썩게 된다. 조직도 호수와 마찬가지로 인력의 순환이 필요한데 평생직장이 되면 조직원은 별다른 자극을 느끼지 못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조직원도 ‘큰 잘못만 저지르지 않으면 퇴직 때까지 다닐 수 있다’라는 안이한 생각에 긴장감이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의 필요성이나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에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 조직원의 바람과는 달리 조직이 먼저 병들면서 조직이 사라지게 된다.
평생직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그 자이에는 ‘평생 직업’이 자리하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직업은 중소기업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대기업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사람도 능력이 향상되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 입사를 위해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평생 직업을 위해 직장인은 자기계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직장도 ‘지금과 같은 평온한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다양한 이유로 조직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 여파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직장이 사라지면 직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영원히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불행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 달 후 혹은 일 년 후 직장이 사라진다’라는 긴장감을 스스로 만들면서 자기계발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동료와의 가치 없는 맹목적인 술자리나 취미활동을 줄이는 등의 희생이 필요하다.
퇴직테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몸담은 직장을 떠날 때 웃으면서 떠날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떠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평소 성실하게 준비한 직장인은 다음 기회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안한 미래와 싸워야 한다. 퇴직테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경쟁력을 높일 방법인지 항상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미래에 대한 불안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삶에 대한 관심은 현재의 직장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조직원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이때 먼저 퇴직한 선배가 창업에 실패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의 미래가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불안해한다. 미래가 불안한 조직원이 자신의 일에 전념하기란 쉽지 않다. 머릿속에는 ‘지금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불안이 또 다른 불안을 가져온다.
반면 자신의 미래를 탄탄하게 설계하는 경우는 다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조직원은 건강을 챙기기 시작한다. 건강한 조직원은 조직에도 도움이 된다.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는 회사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준비라도 시작한다면 미래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