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였다. 퇴근 시간이라 버스의 모든 좌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감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등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소리가 들려오면서 버스 안의 평온함이 깨졌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앞자리에 앉은 나이 드신 분이 이어폰 없이 뉴스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으로부터 소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음을 들어야 하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계속 눈총을 주었지만, 그분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뉴스를 들었다. 뉴스의 내용이 중요한 것도 아니어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라고 말할까?’, ‘이어폰을 빌려준다고 말할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앞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검토하던 또 다른 나이 드신 분이 그 사람에게 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하면서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 불편을 겪은 경험들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철의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이다. 노약자석은 나이 든 사람만 앉는 것이 아니라 몸이 힘든 젊은 사람도 앉을 수 있지만, 노약자석에 앉았던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는 경우는 흔하게 본다. 심지어 깁스하고 앉아있는 학생이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야단을 맞은 경우고 있다. 이런 경우를 당한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끼게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물론 노약자석과 관련해 나이 든 사람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몸이 불편해 자리에 앉고 싶은데 자신을 보면서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튼튼한 젊은이를 보면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자리를 양보했었는데….’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도,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양보를 강요하는 이런 생각들은 결코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일은 조직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직장에서 상사나 부하 모두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하고 급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상사는 자신이 시킨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자신이 시킨 일 대신 고객의 요구를 처리하기 위해 관련 부서의 업무를 먼저 처리했다가 상사로부터 엄청나게 혼난 부하도 있다. 물론 상사의 지시가 중요한 일이었다면 부하가 당연히 혼나야 하지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회사 일을 하면서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면 부하는 상사가 깁스한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하철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아주 오래된 고전에서도 ‘요즘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라는 문장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른들의 관점에서 젊은 사람들의 행동이 못마땅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이 더욱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고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고, 권한이 많은 사람은 그 권한을 이용해 부하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고객이 자신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면 외면하지 말고 고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고객은 자신의 편이 될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상사와 부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 자신의 노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큰 열매가 되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