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필자 부부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 만들어졌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설거지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에 따라 부부 사이에 설거지를 놓고 눈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쁘지 않을 때는 서로 돕기도 하지만 가족 모두가 바쁠 때는 자기 일하기에 급급해 도울 여력이 없어 설거지 당번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무언의 압력이 가해지곤 한다.
사실 설거지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다. 설거지는 음식물 찌꺼기만 없애고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길어야 30분 이내이다. 문제는 설거지하는 시간이다. 두 사람 모두 퇴근하는 시간이 늦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면 9시 정도가 된다. 밥을 먹고 나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습관적으로 TV를 켜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눕게 되고 어느 순간 깜빡 잠이 든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 자고 나면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이때부터 설거지하려고 하면 마음속에서 짜증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10시 전에 설거지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고 난 다음 스스로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이럴 때 짜증의 대상은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첫째는 자신이다. 잠깐 졸고 난 다음 눈을 뜨면서 ‘아, 바로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이게 뭐야!’라는 후회를 가장 먼저 하게 된다. 둘째는 가족이다. 늦은 밤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속에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다 와 피곤해하면 설거지를 대신해 줄 수도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설거지를 나 몰라라 하는 가족의 무관심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가족 모두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있어 누구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 이외에 다른 사람의 역할까지 하게 되면 도와주는 사람은 피곤이 가중되고, 피곤이 쌓이면 도와달라고 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짜증은 설거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신이나 가족을 보면서 야속하게 생각하더라도 결국 설거지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본인이다. 뒤늦게 일어나 후회하는 시간에 빨리 설거지를 시작하는 것이 정신건강이나 설거지 마무리에 도움이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집안일을 뒤로 미룰수록, 짜증을 낼수록 그릇만 깨고 설거지를 마치는 시간이 늦어질 뿐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미루는 경우가 흔하다. 업무가 미뤄지는 주된 이유는 게으름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급하거나 중요한 업무 때문에 업무가 미뤄지면 그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은 늦어지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담당자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미루는 습관은 대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무를 미루게 되면 그 업무와 관련된 사람 모두의 업무처리에 지장을 준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루는 습관이 고착된 사람에게서는 업무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의 성과 또한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항상 ‘저 사람은 업무를 미룰 수도 있다’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주변 사람과 함께 일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또한, 미루는 습관은 직장인의 수명을 단축한다. 직장인의 수명은 업무성과에 비례한다. 상사나 동료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근무하기를 원한다.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에게는 짜증과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즐겁게 일해도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데 하물며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예상되는 결과는 뻔하다. 결국, 미루는 행동은 자신의 미래를 먹구름으로 가득 뒤덮는다.
업무를 미룬다고 그 업무가 없어지지 않는다. 업무를 미루는 것은 카드 대금 결제를 미루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카드 대금을 제때 결제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갚아야 할 금액이 커지는 것처럼 업무를 미루면 해야 할 일이 누적되면서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