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수사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 혹은 구속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법원에서 형을 확정받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으로 프랑스 시민혁명의 산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9조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라는 선언을 근거로 한다.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라고 판정된 자만이 범죄인이라 불려야 하며, 단지 피의자·피고인이 된 것만으로는 아직 범죄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마시던 브랜드의 두유에서 벌레 같은 작은 이물질이 발견되었다. 싱크대에 두유를 쏟고 사진을 찍은 다음 이물질을 랩에 싸 두었다. 다음날 두유 제조회사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담당자로 인해 통화가 계속될수록 화가 마음속에서 쌓이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원인 파악을 위해 질문한다고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벌레일지도 모르는 이물질이 든 두유를 마신 고객의 마음은 외면한 채, 원인이 고객이나 유통과정에 있듯이 질문하는 담당자와의 통화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마치면서 ‘이 사람은 고객이 잘못했다고 판단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씁쓸했다.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객의 억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담당자의 이런 경험은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킨다. 고객의 불만을 듣는 순간 고객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면, ‘고객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는 편견으로 인해 고객이 제기하는 불만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객의 의견은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두유 공장의 담당자가 고객을 편견 없이 대했다면 혹시나 모를 벌레가 들어있는 음료를 마신 고객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고, 이 글도 그 담당자를 칭찬하는 내용이 되었을 것이다.
고객을 비롯해 대화 상대를 대할 때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필요하다. 담당자 중에는 고객이 부르면 ‘무슨 귀찮을 일을 시키려고 부를까?’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부하 중에도 상사가 자신을 부를 때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부하도 있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진다. 고객은 자신을 향해 찡그리는 직원의 얼굴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말도 퉁명스럽게 하게 된다. 반면 고객이 자신을 부르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하면 표정도 밝아지게 되고 고객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태도와 기분이 달라지고 상대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고객 응대 업무를 하게 될 때 ‘나를 귀찮게 하려는 사람’이라는 의심 대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동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게 된다.
고객의 불만을 처리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고객이 제기한 불만에 문제가 있더라도 고객의 목적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고객을 정성껏 대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거짓말이나 무리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순간 이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사기꾼이다. 이때부터 회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기꾼을 응징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것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가 선의의 고객을 보호하고 악의를 가진 사람은 응징한다는 확실한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면 회사를 상대로 장난치는 사람은 사라지게 되고 조직원은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고객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상사와 부하 간의 태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상사 중에는 ‘유죄 추정의 원칙’으로 부하를 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편견을 갖은 상사는 부하의 실수를 찾기 위해 애쓴다. 부하가 힘들여 쓴 보고서를 읽으면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와 같은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부하를 능력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사도 있다. 이런 상사와 달리 부하를 온전하게 바라보면서 보고서 내용 전체를 읽고 난 다음 적절한 피드백을 부하에게 제공하는 상사도 있다. 두 사람 중 어떤 상사가 조직에 도움이 되는지는 명확하다.
부하도 상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상사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야단칠 때도 상사의 뒷전에서 뒷담화를 하는 부하가 의외로 많다. 상사가 허점이 많은 부하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하지 않으면 부하는 성장하기 어려워 조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설사 상사가 일부러 트집을 잡더라도 ‘나를 위한 긍정적인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편안하게 상사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상사는 부하를, 부하는 상사를 편견 없이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때 관계는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조직 또한 성장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업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한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가장 큰 수혜자는 자신이라는 사실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