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퇴직할 때 직장생활 동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에 밴 습관 등을 가지고 퇴직한다. 다행히 이런 습관이나 태도가 가족 혹은 지인들에게 도움이 되면 별 탈 없이 퇴직 후 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퇴직 후에도 힘들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직장생활은 경쟁의 연속이다.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만 채우면 되는 생산직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제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승진’에 대한 욕심이 있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승진을 하면서 급여도 오르기 때문에 경영진으로서는 상대평가라는 수단을 통해 승진이라는 달콤한 결과로 직장인의 경쟁을 유도한다.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열심히 노력해 동료를 이기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를 깎아내려 동료를 이기는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경쟁자 모두가 성장하는 방법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내가 어느 정도 노력해야 상대보다 앞설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자신이 노력할 때 상대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면 노력을 하더라도 경쟁에서 앞선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법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경쟁자의 약점을 파악하려는 본능이 있다. 야생에서 동물은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이런 본능은 사람에게도 남아 있다. 회의할 때의 모습을 보면, 상대가 자기 의견을 말할 때 ‘어떻게 하면 상대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부터 찾게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상대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순간 상대가 자신보다 경쟁 우위에 서게 되고, 자신은 상대보다 열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리스크 관리를 위해 부족한 점을 찾기 위함이지 상대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님에도 아이디어의 좋은 점보다는 부족한 점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20년 이상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퇴직을 하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판적 사고’이다. 비판적 사고의 대상은 ‘일’이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판적 사고의 대상이 일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부하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제출했다. 이때 상사는 보고서의 내용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데이터 해석의 오류 그리고 실행했을 때 조직에 비치는 영향 등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사가 부하의 능력이나 태도에 관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직장에서 들을 수 있는 심한 말로는 “내가 발로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 혹은 “제발 월급 값이라도 해라”와 같은 말이 있다. 이런 것은 비판적 사고가 아니라 ‘비난적 사고’로 관계를 멀게 만들고, 성과 떨어뜨리는 말이다.
직장생활 내내 계속되는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비난을 통해 비교 우위에 서겠다는 전략은 퇴직 후에도 생명을 유지한다. 가장 먼저 배우자나 자녀를 대상으로 부하에게 사용한 대화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자녀에게는 “방 청소도 하지 않고 이렇게 지저분하게 생활하니 성적도 그 모양이지.”와 같은 비난을 하고, 배우자에게는 “당신 친구는 음식 솜씨도 좋다고 그러는데 당신은 왜 그래?”라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배우자를 공격한다.
밥 먹을 때 하는 이런 부정적인 소리는 최악의 결과를 만든다.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들지 않는다’라는 속담처럼 잔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으면 소화도 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잔소리를 들으면 방으로 피하면 되지만, 식탁에서 하는 잔소리는 피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사람과 대화하지 않을 방법은 함께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퇴직자는 조금씩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왕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까다로운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까다로운 성격은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 매우 비판적이고, 높은 기준을 요구하며, 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이나 사람에게 높은 기준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실수나 결정을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을 만족하기 위해 숨이 막힐 수 있으며, 결점이나 실수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비난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런 성향의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런 사람이 상사라면 부하는 마지못해 밥이라도 같이 먹어주지만, 퇴직 후라면 이런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기분이 나빠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멀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모라도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면 가능한 한 멀리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퇴직자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스스로 초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가 아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달렸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는 사람이 지인으로부터 환영받기란 쉽지 않다. 물론 퇴직자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지인들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으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지만, 여유가 없어지는 순간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상대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계를 상대와의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을 여느냐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가 결정된다. 내가 마음을 열면 열수록 내 마음속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달라진다. 따라서 일할 때는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까다롭게 상대를 대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가족이나 지인이 편안하게 행동할 공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