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제지에 ‘연봉 2억 받았는데 알바 자리도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주요 내용은 직업을 구하는 대기업 혹은 증권사 출신이 취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구직이 어렵다는 것이다. 직업을 구하기 어렵기는 비자발적 퇴직을 경험한 중장년층만이 아니라 청년층도 마찬가지라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으면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마음이 초조해진다. 즉,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에는 함께 고민해야 하는 내용도 있다. 기사의 머리말을 장식한 대상은 KBS 1TV의 ‘추적 60분’에서 ‘위기의 50대 나는 구직자입니다’ 편에 출연했던 삼성 그룹 출신이다. 이 사람은 재직 중 연봉 2억 원으로 다수의 특허를 출원하고 은퇴 후 재취업을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단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찾기 어려운 냉혹한 현실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런 인재들이 자기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대신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한다. ‘치킨집주인들을 모으면 어지간한 회사의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것처럼 퇴직 후 자기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TV나 언론에 취업난을 호소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나이가 많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그런지 유독 나이에 민감하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서열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나라도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이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나이로 인한 서열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민감하다는 뜻이다. 즉, 직장을 퇴직한 다음 취업을 하려고 할 때 고용주나 퇴직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의 나이가 퇴직자보다 적다면 서열 관계가 역전되면서 서열 스트레스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퇴직자의 능력이 탁월하지 않다면 채용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이다.
TV나 언론에 취업난을 호소하는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연봉이 높다’라는 것이다. 채용하는 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급여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중소기업 사장이나 자영업자보다 연봉이 더 많기 때문에 ‘2억을 받던 사람에게 최저 임금을 지급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이런 질문을 생각하는 순간 불편함을 느끼면서 채용을 꺼리게 된다. 채용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사람이 원하는 자리에 경쟁자가 없다면 채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경쟁자가 있다면 자기가 마음 편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즉, 고연봉자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자리에 구직 원서를 넣는 순간 오히려 채용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연봉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포인트는 ‘높은 연봉’이 반드시 ‘높은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대기업 계열사의 정보시스템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필자의 대학 동기가 외주 업체 파견 직원으로 있었다. 필자는 수시로 그 친구에게 가르침을 청할 정도로 필자보다 훨씬 업무 역량이 뛰어났지만, 필자보다 연봉이 낮았다. 필자는 그저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 친구보다 연봉을 더 받은 것이다.
대기업 직원이 중소기업 직원보다 평균 연봉이 더 높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건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가난한 집 자녀보다 보통 용돈을 더 많이 받는다고 이해를 해야지, 부잣집 아들이 공부를 더 잘하기 때문에 용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화려했던 이력은 재취업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와 경쟁의식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집단 내의 지위와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여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의식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용하는 사람 혹은 고연봉자를 부하로 둬야 하는 사람은 능력이 검증된 구직희망자에게 자기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위기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채용을 거부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재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
구직 활동을 할 때 하향 지원이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다. 언론에 보도된 연봉 2억 원을 받는 구직희망자는 사무직 아르바이트까지 채용이 거부당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채용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의 경쟁력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무 보조업무는 문서 작성이나 관리, 자료 수집 및 조사 그리고 고객 대응이나 부서 지원 업무가 주를 이룬다. 이런 업무를 부서장 출신이 20대 젊은 직원과 경쟁해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고직급 혹은 고연봉 경험자가 하향 지원을 하면 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취업을 희망하는 퇴직자는 과거의 모든 경력을 리셋해야 한다. 자신이 지원하려는 포지션의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한 다음, 그 경쟁자와 비교해 자신의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만약 부족한 역량이 있다면 고용주가 매력을 느낄만한 역량을 향상한 다음 지원해야 채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취업은 대학 입시와 다르다. 대학 입시는 자신이 받은 성적을 수치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과 예상 합격선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합격선이 예상되는 대학을 지원하면 합격 가능성이 커지지만, 취업은 객관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판단한 하향 지원이 반드시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하향 지원은 실패 횟수만 늘려 자존감과 자신감만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구직을 희망하는 퇴직자는 자신의 역량을 차분하게 정리한 다음, 그 역량이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포지션에 지원한다면 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