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가 경험하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 일 수 있다. 퇴직 후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삶의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의 심리적 요인과 사회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퇴직자가 외로움을 느낄 때 그 영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받는 사람이 가족이다. 가족은 퇴직자로부터 시간 사용에 대한 과도한 요구로 고통받을 수 있다. 퇴직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오늘 저녁은 다 같이 외식하자”, “주말에 같이 여행 가자” 혹은 “지금 당장 같이 산책 나가자”와 같이 가족의 스케줄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즉흥적이거나 잦은 동반 활동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이로 인한 갈등도 많이 일어난다.
배우자는 자신의 오랜 생활 패턴이나 개인적인 약속이 있을 수 있고, 자녀들은 직장 생활이나 학업, 친구 관계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낸다. 퇴직자의 함께 하자는 요구가 잦아지면 가족은 “나만의 시간이 없다” 혹은 “아빠 때문에 자유 시간이 없다”라고 원망하면서 퇴직자의 요구에 부담감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또 뭘 같이 하자고 하네’ 혹은 ‘좀 쉬고 싶은데 자꾸 뭘 시키네’와 같은 불만으로 이어지면서 짜증이나 퇴직자를 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퇴직자는 가족의 이런 반응에 서운함을 느끼고, 가족은 죄책감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퇴직자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가족과의 연결감을 느끼기 위해 가족의 개인 공간인 방에 불쑥 들어가거나, 전화 통화와 같은 개인적인 대화에 끼어들고, 핸드폰 사용 내용이나 교우 관계 등을 지나치게 궁금해하며 간섭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가족은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자신의 사생활이 존중받지 못하고 감시당하는 듯한 불편함을 느낀다. “왜 내 방에 허락 없이 들어오세요?”, “개인적인 일인데 왜 자꾸 물어보세요?”와 같은 직접적인 불만으로 이어지거나 가족이 퇴직자가 있을 때 개인적인 활동을 자제하거나 숨기는 회피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결과는 가족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경계를 무너뜨려 관계를 경색시키고, 가족이 집을 불편한 공간으로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퇴직자는 가족에게 의미 없는 대화를 강요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퇴직자가 배우자는 배우자나 자녀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의 과거 경험, 생각, 불만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거나, 가족의 사소한 행동이나 습관에 대해 지적하고 잔소리를 한다. 대화를 통해 가족의 관심과 인정을 원하는 퇴직자의 의도와는 가족은 처음에는 퇴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지만, 반복되는 내용이나 끝없는 잔소리에 점차 지치게 된다. “또 그 얘기세요?”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귀에서 피가 나요”와 같은 반응이 나오면서 대화 자체가 줄어들고, 가족은 퇴직자와의 대화를 피하려 한다. 퇴직자는 가족의 부정적인 반응에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움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퇴직자의 외로움은 결혼한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가 외로움을 이유로 자녀의 집을 자주 방문하거나 동반 활동 혹은 장시간의 전화 통화를 요구하면 자녀는 자신의 가족, 직장,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는 자녀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배우자와의 시간, 자녀 양육 시간 등을 침해하여 피로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배우자와의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자녀는 시간에 대한 부담과 함께 정서적인 부담도 느낄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자신이 전부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감정 기복이나 부정적인 태도가 반복되면 죄책감, 답답함, 무력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퇴직자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장기적으로 퇴직자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로움 해소를 가족에게만 의존하게 되면 퇴직자 스스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거나 취미 활동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퇴직 후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자립적인 생활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하지만 가족에게 의존하는 선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퇴직자는 가족과의 교류만으로는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사회적 역할 상실, 정체성 혼란 등)을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녀가 부담을 느껴 멀어지면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