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적절한 시가가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가장 본능적이고 대표적인 사례가 허기를 느낄 때 밥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직장에 충성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길이다’라는 믿음으로 가족을 돌보는 대신 직장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받쳤다. 이 당시 일부 상사는 아이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출산 휴가를 쓰겠다고 하는 부하에게 ‘자네는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니 회사를 관두고 가정에 충실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직장인 개인의 집안일을 회피하려는 선택도 한몫했다. 필자도 가끔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럴 때 솔직히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회식을 만들고, 그 핑계로 아이를 돌보는 일을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직장을 핑계를 댄 채 오랫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과 집안일에서 벗어난 상태로 생활하다 퇴직을 하면 자신이 그동안 소홀히 했던 대가를 치르게 된다.
퇴직자 A와 B가 있다고 하자. 퇴직자 A는 시간이 될 때마다 가장이라는 자기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물론, 가장의 역할을 위해 직장 동료나 지인들과의 관계가 조금 멀어지면서 생기는 불이익 아닌 불이익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겠다는 각오를 했다. A와는 달리 B는 ‘회사에서 출세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회사와 관련된 것에 쏟았다. 매일 일 끝나면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주말에도 마찬가지로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등산이나 골프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예상했던 것처럼 B가 A보다 훨씬 승진이 빨랐고, B는 A를 보면서 ‘직장 생활은 나처럼 해야지’라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미소가 영원히 갈 수 있을까?
퇴직 후 노후자금이 부족한 사람은 B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가능성이 있다. ‘B처럼 생활했으면 지금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라고 자신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만난 퇴직자 중에는 B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B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은 후회하지 말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B와 같은 유형의 퇴직자가 더 힘들어하고 더 외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자 중에는 B와는 다른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졌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퇴직자도 있다. 필자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선택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족들, 특히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겠다’라는 대답이었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크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는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다. 이때부터는 부모가 관심을 가질수록 자녀는 부담스러워하면서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반항하기도 한다.
만약 아이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할 때 부모가 일하느라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는 ‘돈 벌어오는 사람’ 일뿐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부모는 내가 힘들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야속함이 자리하게 된다.
문제는 부모의 역할에 대한 경험 부족이 대를 물려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체험하지 못했던 자녀는 결혼해 아이를 낳더라도 아이의 성장 과정에 제대로 관여하지 못한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지식을 얻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신의 부모처럼 직장에 시간을 다 쏟는다면 아이를 ‘부모가 있는 고아’처럼 만들게 되는 것이다.
퇴직자는 퇴직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B처럼 직장에만 매달린 사람은 가정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B가 퇴직 후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족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배우자와 자녀와의 대화에서 외톨이가 되거나, 대화에 자신이 끼는 순간 가족이 대화를 중단하고 흩어지는 모습을 그냥 볼 수밖에 없다. 가족도 B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B가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친밀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보니 B를 대하는 방법이 서툰 것이다. B와 가족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골짜기가 남은 채 퇴직 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A는 B와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다. A는 직장에 관한 관심을 줄이는 대신 그 관심을 가족에게 쏟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추억을 만들고, 자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녀와 친밀도를 높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A가 퇴직을 했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다.
B와 같은 생활을 하다 어떤 계기로 A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그렇다. B처럼 회사 인간이 되기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로 심장에 무리가 왔다. 병원에서는 ‘심혈관 조영술’을 실시해야 한다고 해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시술 전날 저녁 레지턴트가 시술 동의서를 받으면서 시술하는 과정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고, 이 말을 들은 배우자는 서울의 유명 병원으로 옮기자고 해 다음 날 퇴원하고 그 병원에 접수했다. 시술이 다시 월요일 오전으로 잡혀 일요일 오후에 병원에 입원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해 간단하게 인사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제대로 인사를 못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후회의 밑바닥에는 검사하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에서 온 것이었다. 다행히 검사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라고 진단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필자처럼 여러 이유로 B와 같은 태도에서 A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직장인이 의외로 많다.
B와 같은 사람이 직면하는 또 다른 장애가 있다. 자녀가 손주를 낳고 난 다음이다. 자녀들은 B와의 관계가 불편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교류를 줄인다. B가 아무리 회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퇴직 후에는 그저 부모 혹은 조부모의 역할만이 남아있다. 이럴 때 손주가 태어나면 자녀에게 못다 한 사랑은 손주에게 대신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이런 B의 마음과 달리 B의 자녀는 B와 대화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불편해 B에게 자녀를 맡기거나 보여주기를 꺼린다. B의 자녀가 B를 멀리하는 이유에는 B에 대한 복수심도 들어있다. 반면, A의 자녀들은 A가 자녀를 보고 싶다고 할 때 자주 A를 방문하고, 자녀를 맡겨야 할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A에게 부탁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손주와의 관계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직장인의 모습은 일할 때 가장 빛난다. 하지만 직장인은 가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직장 생활은 가능한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부모의 역할은 평생이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자녀와의 관계를 다져놓지 않으면 그 후유증은 자녀만이 아니라 손주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