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우리의 삶은 결국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끈끈한 인맥’이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여겨졌다면,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목적에 맞게 관계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개념을 잘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포트폴리오’이다. 사회적 포트폴리오는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양한 관계에 배분하고 가꾸어 나감으로써 심리적 안정, 개인적 성장, 직업적 발전 등 다양한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 자산’의 총체를 의미한다.
사회적 포트폴리오에는 4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그것은 ‘핵심 관계’, ‘기능적 관계’, ‘관심 기반 관계’ 그리고 ‘약한 연결망’이다.
첫째, 핵심 관계이다. 핵심 관계는 사회적 포트폴리오의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는 이루는 것이다. 핵심 관계는 내 삶의 기둥이자 어떤 시련에서도 나를 지탱해 줄 가장 강력한 정서적 지지대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같은 가족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진정한 친구’들이다. 또한, 나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는 멘토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핵심 관계는 우리가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항구’이자 ‘피난처’이다. 핵심 관계는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 이해를 받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생활이라는 고된 파고에 지쳐있을 때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품어주는 피난처가 된다. 이런 관계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삶의 위기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서적 회복 탄력성을 길러준다.
삶을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실패와 좌절, 상실감을 겪기 마련이다. 이때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바로 핵심 관계로부터 오는 정서적 지지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네 편이야’라는 가족과 친구의 지지야말로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회복 탄력성의 원천이다. 이 지지대가 약해지면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지고,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워진다.
핵심 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확인받는다. 핵심 관계는 직업에서의 역할이나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 관계가 소홀해지면 나의 진정한 모습을 공유하고 인정받을 기회가 줄어들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어려워진다. 결국,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을 수 있다.
불안정한 핵심 관계는 지속적인 심리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가족과의 갈등, 소통 단절은 수면 장애, 식욕 부진, 만성 피로,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신체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기에,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핵심 관계들은 ‘노력 없이 저절로 유지된다’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과 진심을 투자해야 하는 관계가 핵심 관계이다. 질적인 교류에 초점을 맞춰 진솔한 대화, 주기적인 교류, 서로의 기대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노력, 그리고 ‘함께하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기능적 관계이다. 기능적 관계는 나의 목적 지향적인 삶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관계는 나의 직업적 성장, 지적 확장 그리고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동력이 된다. 직장 동료, 상사, 비즈니스 파트너, 특정 업계의 전문가, 관련 분야의 학회 회원, 혹은 당신이 속한 동문 네트워크 등이 기능적 관계에 해당한다.
기능적 관계들은 ‘기능적 상호성’을 바탕으로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지식, 기술, 정보, 기회를 주고받음으로써 실질적인 이익을 창출한다. 경력 개발, 재취업 정보 획득,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 모색 그리고 전문 지식 습득과 효율적인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기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책이나 역할이 사라져도 ‘관계 자체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네트워킹(업계 모임, 세미나 참여), 정기적인 안부 교환 그리고 나 또한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성’이나 ‘정보’를 유지하고 제공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기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음’이 있는 파트너십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관심 기반 관계이다. 관심 기반 관계는 나의 삶에 활력과 재미를 더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관심 기반의 관계는 유유상종의 함정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관심 기반 관계는 나의 취미, 가치관, 학습 목표 등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스포츠 동호회 회원, 스터디 그룹 멤버, 자원봉사 단체 구성원,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등이 해당할 수 있다.
관심 기반 관계는 나의 자발적인 흥미에서 시작되므로 즐겁게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연령, 직업, 사회적 배경의 제약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나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하게 돕는다. 퇴직 후 고립감을 해소하고 삶에 새로운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에 퇴직 준비에 상당히 중요하다.
관심 기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새로운 취미 활동이나 모임에서 단순한 참여를 넘어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넷째, 약한 연결망이다. 약한 연결망은 나의 일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때로는 나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변화와 기회를 가져다줄 ‘숨겨진 보물 지도’와 같다. 약한 연결망은 매일 만나거나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된 모든 느슨한 관계들이다. 가끔 안부를 묻는 옛 동료, SNS 친구, 업무상 잠시 알게 된 지인, 지인의 지인 등이 이에 속한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의 주장처럼 새로운 정보나 혁신적인 기회는 대개 이러한 느슨한 연결로부터 온다. 핵심 관계나 기능적 관계는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지만, 약한 연결망은 나의 세계관 밖의 정보를 가져다준다. 이 관계는 퇴직 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 중요한 관계이다.
약한 관계망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락망을 유지하고, 가벼운 안부를 전하며, 간혹 진행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지만, 연결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SNS를 통해 서로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적 포트폴리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각 구성 요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꾸준히 관리해나가야 한다. 특히 퇴직 후에는 직장이 제공하던 자동적인 관계망이 사라지기에 더욱 주도적인 자세로 이 관계 자산을 설계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사회적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가꾸어 나갈 때 나의 인생은 더욱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연결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