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선수들이 경기와 관련한 시빗거리로 다투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다툼의 원인은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을 때 번트와 도루, 투수 교체를 삼가라’와 같은 불문율 때문이다. 특히 ‘큰 점수 차이’에 대해서는 팀이나 선수마다 다르게 해석하면서 다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기고 있는 팀은 확실한 점수 차이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점수를 내려고 노력한다. 지고 있는 팀은 상대편이 야구의 불문율을 어겼다고 시비를 걸면서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선수들이 야구 규칙에도 없는 불문율을 지키려고 시도한 것 자체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야 하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불문율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 최선을 다하지 말자’라는 암묵적 동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문율을 경기에 적용하려는 선수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선수로서의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프로 야구 선수로서 ‘팬들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불문율은 ‘문서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지키는 규율’이다. 이런 불문율은 야구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직원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에서의 불문율은 복장이나 머리 모양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업무 태도나 승진과 관련된 내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예전 직장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회사에 입사한 다음 해 결혼했다. 결혼 즈음에 장모님이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선물해주셨다. 장모님이 분홍색 와이셔츠에 꽃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선물해주셨다. 신혼여행이 끝난 후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착용하고 출근을 했다. 상사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와이셔츠 색과 넥타이 무늬에 관해 마디씩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하얀 와이셔츠에 단색 넥타이를 매는 것이 회사의 불문율이었다.
대부분의 ‘불문율’은 조직원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 ‘점수 차이가 큰 경우에는 도루하지 마라’와 같이 조직원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하기보다는 금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불문율이 조직에 미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문율은 조직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앞의 사례에서 상사는 부하에게 ‘다른 색의 와이셔츠를 입어라’라고 지시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하로서는 상사로부터 ‘다른 색의 와이셔츠를 입고 오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부하는 상사가 와이셔츠 색을 말하는 동안 ‘내가 색다른 옷을 입어서 상사가 저런 말을 하는구나’ 정도로 인식하지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오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사는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하를 보면서 ‘내 지시를 무시하고 있다’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런 경우 상사가 명확하게 “다른 색의 옷을 입기 바란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 말을 무시하네’라고 혼자서만 생각하고 부하를 괘씸하다고 생각하면 상사의 행동은 거칠어진다. 부하는 자신을 대하는 상사의 거친 태도에 대해 ‘왜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사에게 반발하게 된다.
조직에서 불문율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조직원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로 인해 조직원 사이에 갈등이 만들어진다. 만약 짙은 색의 와이셔츠나 화려한 넥타이가 업무에 지장을 준다면 그 이유를 조직원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직원에게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불문율을 따르라고 하면 조직원은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반발하게 된다. 이런 행동들은 조직원의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쏟게 만들어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불문율은 평가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일부 회사에서는 승진을 앞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고과를 부여하는 사례가 있다. 객관적인 평가에서는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고과를 받아야 하지만 ‘승진을 앞둔 사람에게 높은 고과를 부여한다’는 관례에 따라 선배에게 양보를 했다면 후배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제때 승진할 수 있을까?’ 또는 ‘다음 인사이동 때 선배가 배치되면 어쩌지?’와 같은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하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업무의 집중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런 불공정한 평가는 몇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첫째, 조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 승진을 앞둔 사람에게 높은 고과를 주는 관행은 조직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어렵게 한다. ‘이번에 내가 승진할 차례니까 고과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주변 사람들의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높은 고과를 받지 못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조직원들의 이런 태도에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직원이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에는 ‘물질적 보상’과 ‘심리적 보상’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보상은 연봉이나 상여금처럼 일의 대가를 돈으로 보상하는 물질적 보상이다. 많은 회사는 물질적 보상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물질적 보상이 당장에는 효과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 물질적 보상은 즉시 보너스의 형태로 제공되기보다는 다음 해 연봉에 반영되기 때문에 시간차가 존재하므로 즉각적인 체감효과를 느끼기는 어렵다. 또한 돈으로 조직원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보상액을 높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지지나 격려 그리고 칭찬과 같은 심리적 보상이다. 금전적 보상이 돈이라고 하는 외적 자극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라면 심리적 보상은 조직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적 자극이다. 물질적 보상에 비해 심리적 보상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심리적 보상은 심리 에너지를 높인다. 특히 화이트칼라는 심리 에너지가 업무 성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조직의 리더가 성과를 내기 위해 적절하게 심리적 보상을 활용하게 되면 조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심리 에너지가 많아져 성과를 내기가 수월해진다.
셋째,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야 할 불문율이 많아지게 된다. 근거 없이 만들어진 불문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다른 불문율들이 만들어지게 되고 조직원들은 불문율오 인해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면서 수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수동적인 사람이 높은 성과를 내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조직 전체의 성과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불문율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만약 불문율을 활용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사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직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불문율을 새롭게 만들거나 최소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 복무 중인 아이의 부대에는 ‘선임이 신규 전입 후임에게 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선물’하는 불문율이 있다. 작년 겨울 부대 배치를 받은 아들이 선임으로부터 방한 용품을 선물 받고 기뻐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2달 후 후임을 받은 아이는 “후임에게 방한용품을 사주었다”라고 말하며 뿌듯해했다. 이런 긍정적인 불문율은 조직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둘째, 불문율의 필요성에 대해 모든 조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럴 경우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득이 되는 불문율이어야만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구성원들에 의해 불문율이 지켜질 수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법이나 규칙은 없듯이 대대로 전해지는 불문율은 있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르거나 환경이 바뀌면 사람들의 요구나 이해관계 또한 변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불문율이라도 사람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불문율이라면 지속될 수 없다. 그러므로 ‘관계대로’ 혹은 ‘불문율이니까’라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모든 구성원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검토한 후 수정이나 보완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버릴 용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