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도전

by 말 없는 나무

정신과 약을 끊고 난 이후에도 병원에서 일을 이어갔지만, 전 직장과는 다른 파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은 또래 직원들이 있었기에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임상병리사로서 전 직장에서 채혈을 처음 배우긴 했지만, 환자가 많지 않아 경험이 쌓이지 못한 상태였다.



여름이 지나고 입사 몇 달 만에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기 위해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전에 남자친구에게 우리 집 사정을 솔직히 얘기해 두었다.


첫 만남이라 남자친구는 양복을 입고 왔다. 나는 아빠가 뭐라고 하실까 두려웠다.

몇 년 전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우리는 시골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에 가서 놀고, 타워에 들러 유명한 빵을 먹었으며, 동생과 노래방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밤에는 시내 호텔에서 숙박했다. 아빠는 “돈 아깝게 왜 멀리 가서 자냐”라고 하셨지만, 우리 집은 좁아 남자친구를 재울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큰 키에 방이 더 답답해 보였다.


저녁에는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에서 자란 남자친구는 전라도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았지만, 술기운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할머니도 “네가 좋다면 잘 지내보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여전히 무심했고, 그저 안 된다고만 했다.


큰 탈 없이 명절이 지나고,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반찬을 챙겨주셨다. 길이 멀다며 구겨진 돈을 내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실 때, 마음이 짠하면서도 따뜻했다.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먼 길을 운전해 준 남자친구가 고맙기도 했다.


추석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이전 병원보다 퇴근이 빨랐고, 일요일에 쉴 수 있어 행복했다.


직장은 종합검진도 하는 곳이라 주로 검진 환자의 채혈과 심전도 촬영을 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검사실에 들어가 장비를 배우고 검사 방법도 익혔지만, 현미경은 특히 어려워 몇 달이 걸렸다.

한 달에 10권이 넘는 서류 정리도 맡게 되어 머릿속이 늘 복잡했다.


장비 사용이 어렵고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자, 나는 스스로 이 파트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시력이 좋지 않아 현미경을 못 본다고 핑계까지 댔다.


3개월이면 적응할 줄 알았지만, 5~6개월이 지나도 실수가 잦았다.

채혈에도 실패했고, 물어볼 말이 있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곤 했다. 동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늘 남을 탓했다. “내가 힘든 건 남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내 성격을 돌아보지 않고, 이기적으로만 생각했다.


실수를 하면 눈치부터 보고, 며칠이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설치곤 했다. 약을 갑자기 끊어서 그런지 집중력이 흐려지고 무기력해졌다.

잡다한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싫었고, 실수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동료들이 나 빼고 모여 이야기할 때는 내 욕을 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울고 싶었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때의 감정들이 피해망상이었다는 것을.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직장 생활은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입사 7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나에 대한 험담을 듣고도 반박하지 못했다. 실수투성이의 내 모습이 한스럽기도 했고, 답답하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커져 갔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시간이 흐르자 직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결국 나는 8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1년만 채웠다면 경력으로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마저 이루지 못했다.


퇴사 후 홀가분하면서도 막막했다. 남자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울엔 일자리가 많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또 재취업해도 나 발로 나오게 될까 봐 두려웠다. 세상이 아니라, 내 자신이 두려웠다.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면서는 더욱 눈치가 보였다. 일을 그만둘 때마다 싸움이 잦았다.

나도 잘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오래오래 다니고 싶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몇 년씩 한 직장에 다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겐 1년조 차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일을 그만두면 남자친구 혼자 힘들어졌다. 우리는 그 탓에 자주 싸웠고, 몇 번이나 헤어질 뻔했다.



주변에서는 전 직장을 그만두고 바로 일을 시작한 게 문제라고 했다. 겨우 한 달만 쉬고 다시 일을 했으니, 회복할 시간도 없이 뛰어든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해보지 못한 채, 무작정 일을 시작해 버렸다.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또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이젠 안다. 회사를 자주 옮기면 면접관은 선뜻 뽑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밀 수 있는 건 면허증 하나뿐이었다.

일하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퇴사 후 딱 한 달을 쉬었다. 집안일을 하고,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맘먹고 다시 병원 공고를 보고 지원을 시작했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에서 “왜 전 직장을 그만뒀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수없이 연습했다.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과연 내가 다시 잘할 수 있을까? 또 그만두면 어떡하지? 착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결국 나는 다시 병원에 취업했다.

살아가야 했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