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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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포이, 신탁의 불꽃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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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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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신탁의 불꽃 속에서
1.
태양신 아폴론이
세상 밝히려 내려온다
돌산 파르나소스에
빛 한 줄기 꽂히자
델포이 숨을 들이쉰다
2.
그곳은 땅의 배꼽,
세상의 중심이라며
신탁의 불꽃 타오르고
하늘과 땅의 경계
신의 말씀이 내린다
3.
처음은 혼돈뿐이던 곳
괴물 퓌톤이 지키거늘
아폴론 활을 당겨
한순간에 꿰뚫고선
신전을 세워 앉는다
4.
그의 제사장 피티아
삼발의에 앉을 때면
연기 속에 몸을 담고
신의 입 되어 말하네
운명이 말을 걸었다
5.
왕도, 장군도, 민초도
오직 그 앞에 엎드려
무엇을 해야 할지
묻고 또 묻는 동안
자기 자신을 잃는다
6.
“너는 가리라, 그러나
돌아오진 않으리라”
신탁은 늘 비틀려
진실보다 함축된
미로 같은 문장이라
7.
어느 이는 해석 못 해
전쟁터로 향하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어느 이는 뜻을 알고
나라를 건져 올린다
8.
오만한 자 묻지 않고
지혜로운 자 질문하니
피티아는 미소 짓고
말보다 침묵 속에서
진짜 길을 건넨다
9.
신탁은 예언 아닌
자기 마음의 거울이라
듣고자 한 것보다
듣기 싫은 진실이
언제나 먼저 도착해
10.
태양신 아폴론도
언제나 완전하진 않네
빛의 신도 외로워
노래로 진실 감추며
리라를 안고 운다네
11.
신전의 돌기둥 위에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늘
그 뿌리 흔들릴 때
운명도 머뭇거리며
사람을 기다린다
12.
델포이는 지금도
묻는 이의 입술마다
숨결 하나 새기며
신탁 아닌 자기 뜻
깨닫는 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