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1부:오라온의 비극, 2부:아르테미스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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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오리온의 비극
— 대서사시 시조 12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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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의 시점
1.
바람이 이끈 내 발은
동쪽 끝 신들의 숲,
그녀는 달빛 같았지.
2.
사슴을 따르던 여신,
한 번도 사람을 보지 않던
그 눈이 나를 향하였지.
3.
말이 없어도 좋았다,
함께 걷는 발자국엔
고요한 온기가 깃들었네.
4.
차마 말하지 못했다,
사랑인가, 존경인가,
신에게 품은 나의 마음을.
5.
그녀 곁에 머무르고
화살을 피하며 웃던 날,
나는 인간임을 잊었네.
6.
그리고 마지막 순간,
멀리서 날아든 빛살,
그녀의 활이 나를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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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의 시점
7.
사람을 믿지 않던 나,
그런데 그가 다가와
숲보다 더 깊은 눈을 주네.
8.
차가운 별빛 같은 나,
처음으로 따뜻했지
오리온과의 저녁노을은.
9.
그러나 피할 수 없던
아폴론의 낮은 속삭임 —
"그를 의심해라, 여신이여."
10.
망설인 채 활을 들고
멀리 보이는 점 하나,
나는 눈을 감고 쏘았다네.
11.
물 위에 피가 흐르고
달보다 더 창백한 죄책,
내 손이 그를 지웠구나.
12.
그래서 그를 올려 보냈지,
하늘의 자리 하나 만들어
밤마다 나를 바라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