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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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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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1부
〈동파육이 된 고기〉 – 배선희
> 가마솥 깊은 곳
서서히 익어가는
밤처럼 살결은 부드러워지고
기름 속엔 기다림이 녹는다
소동파, <소식>
시인이 남긴 한 수의 운율이
살코기 틈새에 스민다
문장의 향신료와
시구절의 간장 한 방울
유배지의 외로움도 함께
졸여낸 밤의 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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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2부
〈동파육, 혀 위의 서정시〉 – 배선희
> 소슬한 겨울바람
유배길에 묶여
솥뚜껑 아래 쌓인 사연들
시인은 고기를 삶으며
삶을 시처럼 익혔다
간장처럼 깊어지고
육즙처럼 풍부해진
글자의 농도
그는 말했다
시는 혀 끝에서 다시 피어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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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함축 평론:
〈동파육은 시고, 시는 동파육이다〉
동파육은 단순한 고기 요리가 아니다.
그 속에는 ‘유배’의 서늘한 바람, ‘시’의 뜨거운 열기, ‘삶’의 눅진한 기다림이 있다.
배선희 시인은 솥 안에서 사 그락이는 고기의 숨결 속에 소동파의 문장을 숨겨 넣는다.
1부에서는 ‘기름 속에 녹아드는 기다림’이 삶의 인내로,
2부에서는 ‘혀 위의 서정시’가 언어의 부활로 그려진다.
소동파는 한때 유배지에서 *"이 또한 시가 되리"*라며 고기를 조렸고,
배선희는 오늘날 그 요리를 *“시는 혀 끝에서 다시 피어난다”*라며 응답한다.
여기서 동파육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서정시의 질감이며, 유배지의 시심(詩心)이다.
시를 간장처럼 졸이고, 고통을 향신료 삼아 문장을 우려낸다.
그리고 해학 한 숟갈—
소동파가 만약 오늘날 요리 방송에 나왔다면,
“이 고기, 오행(五行)의 균형이 딱!”이라며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선희는 그런 허세를 비껴가며, ‘삶의 진한 졸임’을 조용히 보여준다.
결국, 이 동파육 시는
‘먹는 맛’이 아니라 ‘읽는 맛’으로 혀를 유혹한다.
그리고 독자는, 문장 속의 고기처럼 천천히 익어간다.
*시인 박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