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2부

시인 박성진

by 박성진

에드바르 뭉크 2부



에드바르 뭉크 2부


「절규 이후의 시간」 — 생의 프리즈를 지나며

박성진 시인의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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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통과하는 색채의 파문


뭉크의 그림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다.

그의 붓은 인간 존재의 내부를 쪼개는 음파처럼 작동한다.

〈절규〉가 비명을 형상화한 회화라면,

그의 이후 작품들은 그 비명 이후의 침묵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우리는 뭉크의 "생의 프리즈(Frieze of Life)" 연작 속에서

사랑, 질투, 이별, 병, 죽음, 영원 같은

인간 실존의 결정적 장면들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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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춤〉 —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



The Dance of Life (1899–1900)


그림의 가운데,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남성과 춤을 춘다.

그들의 주위엔 흰 옷의 순결한 처녀와, 검은 옷의 죽음 같은 여인이 선다.


이는 단지 인생의 세 국면(순결, 열정, 상실)을 상징하는 게 아니다.

그 세 여인은 하나의 생애를 공유하는 자아의 분열이다.

뭉크는 붓으로 심연을 열고,

그림 속에서 인간이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형이상학적 춤을 펼쳐 보인다.


> 삶은 춤이며, 춤은 통곡이다.

시간은 가면을 씌우고, 사랑은 그 가면을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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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아이〉 — 상실의 예술


뭉크의 여동생 소피에(Sophie)는 15세에 결핵으로 죽었다.

그녀를 그린 〈병든 아이〉 연작은

빛과 색의 흐느낌, 아픔의 붉은 그림자다.


그림의 여백은 숨 막히고, 색조는 뭉개져 있다.

이건 테크닉이 아니다.

이건 그리움의 시각화, 고통의 촉각화다.


뭉크는 질병과 상실을 개인적 기억으로 그리되,

그것을 보편적 인간의 감정의 언어로 확장한다.

〈병든 아이〉는 말하듯이 조용히 울고,

그 울음은 우리 마음의 가장 어두운 방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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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의 동거 — 〈죽음의 방〉, 〈자화상과 해골〉


뭉크의 삶은 죽음의 감각과 나란히 걸어간 여정이었다.

부모의 죽음, 여동생의 죽음, 연인의 배신, 자기 안의 광기.

그는 그 모든 경험을 그림에 담아

마치 삶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듯

과거와 현재,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허문다.


〈죽음의 방〉에서는

무표정한 가족들이 침대 곁에 서 있다.

죽음은 중심에 없고, 죽음을 바라보는 자들의 절망만이 그 자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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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질로 기록한 영혼의 일기


뭉크의 회화는 아름다움이나 사실의 추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표면화, 영혼의 시각화다.


그는 말했다.


> "나는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고요하지 않다.

색채는 불안하고, 선은 뒤틀려 있으며,

사람들은 땅 위가 아니라 기억 위에 서 있다.


그의 그림은 내면의 우박처럼,

우리 마음의 유리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 "너는 울지 않았는가."

"너는 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너는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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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절규 이후, 침묵 속에서 탄생한 미학


2부의 뭉크는 단순한 절규의 화가가 아니다.

그는 절규 이후에도 살아야 했던 자이며,

고통을 예술로 구조화한 창조자이다.


그의 회화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듣는 것이다.

그림이 아닌, 하나의 내면의 음악이며,

우리가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안에서 스스로의 상처와 대면하는 순간과 닮았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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