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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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문학의 불꽃, 여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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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조 〈문학의 불꽃, 여든 해〉 (12연)
1.
백 년에 가까운 길
여든 해로 도착해
붓 끝마다 새겨진 겨레의 숨결.
한글 위에 핀 시들이
밤하늘 별이 되어
우리를 비추었다.
2.
무너진 조국 위에
어린 시가 움텄고
눈물 섞인 글자 속 절망이 숨 쉬었다.
침묵 속에서 쓴 시는
총보다 날카롭게
진실을 밝히었다.
3.
해방의 어지러운
새벽하늘을 지나
문학은 다시 빛을 향해 걸어갔다.
분단과 전쟁 속에도
시인의 펜은 꺾인
적이 한 번 없었다.
4.
구름 뒤에 숨은 달
어둠 끝에 핀 문장
비명 같은 산문의 아우성이 되었다.
민중의 말, 농민의 눈
거리의 피맺힌 숨
문학이 품어 안다.
5.
검열을 뚫은 단어
감옥에 핀 한 줄기
빛 같은 시 한 편이 밤을 갈랐다.
혁명도 아닌 혁명
그 속에 문학은 늘
먼저 울고 있었다.
6.
슬픔은 끝나지 않고
삶은 버겁지만
작가는 삶의 진흙 속 꽃을 길렀다.
그 꽃의 향기는 오늘
독자의 가슴마다
깊이 배어 있다네.
7.
산천은 사람처럼
아파하고 또 웃고
문학은 그 얼굴을 시간에 남겼다.
오래 묵은 단어들
새로 피어나는 뜻
언어가 길이 된다.
8.
80년의 물결은
세대를 잇는 숨결
시조에서 소설로 시에서 영화로.
장르와 매체 넘어
이야기는 흐르고
여전히 살아 있다.
9.
해외의 먼 무대서
낯선 독자 가슴에
한글의 울림이 번지고 또 번진다.
노벨상이 아니어도
우리에겐 충분한
고유한 숨결 있다.
10.
오늘의 청년들은
스마트폰 위에서
짧은 시를 읽으며 긴 삶을 생각해.
댓글과 해시태그도
또 하나의 시로써
우리말 꽃 피운다.
11.
문학은 거울이자
예언이며 항해다.
때로는 방패이고 횃불이 되기도.
과거와 미래 사이
말의 다리를 놓는
그런 힘 아직 있다.
12.
여든 해를 살아낸
한국문학이여, 또
다시 한 발 내딛자 낯선 길 위에서.
침묵을 걷는 문장들
희망을 품은 서사
우리의 시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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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문학의 불꽃, 여든 해〉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시문학사다.
이 장시조는 역사적 순행 서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의 디지털 세대까지 한국문학의 흐름과 숨결을 하나의 시적 스펙트럼으로 녹여내고 있다.
초반 연들은 문학의 저항성과 시대적 기록성을 강조한다.
"총보다 날카롭게", "감옥에 핀 한 줄기"와 같은 표현은 한국문학이 사회정의와 저항의 전위에 서 있었던 전통을 뚜렷하게 환기시킨다.
중반부는 삶과 언어, 장르의 확장성을 다룬다. 시와 산문, 영화와 댓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확장과 변형을 수용하면서도 그 본질을 잃지 않는 강인함이 드러난다.
후반부는 미래지향성과 문학의 본질적 역할을 성찰한다.
"거울이자 예언이며 항해"라는 시구는 문학의 인간 내면과 사회를 비추는 사유의 도구임을 선언하며, 마지막 연에서 **"우리의 시는 계속"**이라는 말로 영속성과 희망을 열어둔다.
시조의 형식미와 현대성
각 연은 현대시조의 형식을 따르며, 리듬과 구성은 전통적인 3장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언어와 주제의식으로 새로이 해석된다.
12연은 단지 양적인 확장이 아니라, 역사와 정서, 미학과 사상을 겹겹이 쌓아 올린 담론적 구조로 읽힌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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