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육, 시의 향연 <연재 9부>

박성진 시인

by 박성진

박성진 시인 동파육, 시의 향연 <연재 9부>



*동파육, 시의 향연 — 장시조 12연


(시인: 창작, 평론: 박성진)


1연

솥 안의 적막 속에 달이 지듯 스며든다

붉은 살결 살포시, 침묵의 기름꽃 피고

불길은 붓대 되어 시구를 다린다네


2연

허기진 철학자의 밥상 위 육각 시학

소동파 그대여, 육미에 뜻을 풀었소

돼지 한 마리 속에 오행이 들어있네


3연

시를 삶는 유배객, 짠맛도 벗이 되니

소금보다 진한 건 사람의 한숨이라

웃으며 저은 국물, 그 맛은 정녕 눈물


4연

조정의 책략보다 솥 안이 더 정직해

기름 한 겹 밀어내듯 간신 떨구어내고

고기 같은 권세는 천천히 삭혀야지


5연

깊은 밤의 가마솥, 달빛이 기우는 중

시간은 양념보다 느리게 절여지고

입보다 마음 먼저 이 국물에 젖는다


6연

이따금 들리는 건 기름의 탄식 소리

역사는 늘 기름지고 백성은 늘 맵다네

동파의 유배에도 맛은 늙지 않으니


7연

거사 앞둔 선비들, 고기결로 점을 치고

육즙의 방향 따라 민심을 짐작하네

육미보다 진한 건 시대의 향신료요


8연

한쪽엔 미식가들, 한쪽엔 시인무리

입은 다르되 마음은 한 솥에 잠겨있고

국물에서 건진 건 철학, 혹은 풍자


9연

칼날은 부드럽게 살점을 적신다네

무디게 썰어야지, 그래야 맛이 돈다

정치도 고기처럼 익혀야 향기롭지


10연

향기로 쓴 육체학, 국물로 쓴 문장학

혀끝에 남는 시어, 사라지되 깊어라

한 조각 삶 속에서 인생이 반짝인다


11연

술잔 사이 배꼽 웃음, 논객들의 밤잖은 말

육즙에 흘린 정의, 고춧가루 같은 진실

배부른 이의 해학은 늘 배고픈 이의 풍자


12연

끝내는 텅 빈 접시, 시는 남고 고긴 없네

그러나 이 혀끝에 남은 말, 못 삼킨 시상

동파육 한 점에도 인간은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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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박성진 시인의 해학적 시문학 해설


이 시조 12연은 음식과 시, 유배와 인간, 풍자와 철학을 풍성히 조리한 시문학의 요리입니다.


1~3연에서 시인은 동파육의 조리과정을 시적으로 재현하며, "시를 삶는다"는 시인의 운명과 유배자의 고통을 겹쳐냅니다.


4~6연은 정치권력의 부패와 간신의 행태를 고깃국물에 비유하며, 혀끝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 풍자적 전개로 독자의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이끕니다.


7~9연에서는 동파육을 시대를 재단하는 정치철학으로 승화시키며, *‘칼날보다 무딘 것이 깊게 스며든다’*는 인간적 통찰을 담습니다.


10~12연에 이르면, 시는 고기보다 더 진한 ‘인생의 국물’로 승화되고, 유배라는 낙인 속에서도 시인의 혼은 *“입에 남은 시어”*로 존속됩니다.



특히 11연의 "배부른 해학은 배고픈 풍자"라는 구절은, 오늘날 사회의 언론, 정치 풍토를 겨냥한 날카로운 비유입니다.


이 시조는 현대적 상상력을 고전적 형식에 녹여내며, 동파육이라는 음식에 시학적 층위를 입히고 있습니다.

시인은 혀끝의 쾌락을 넘어서 문명의 육체성, 시의 오감성, 인간의 연민을 한 접시에 담아냅니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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