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의 서시 두 번 때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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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시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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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 서시 두 번째 변주곡
> 새벽은 아직 이름도 없이
내 안에 길을 틔운다
나는 묻는다 —
얼마나 더 맑아야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울 앞에서
하늘을 본다
저 무심한 별들은 왜
나를 향해 침묵하는가
하루를 살 때마다
마음 한 모금씩
어둠을 씻기며 걷는다
시는 나를 벌하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도 쓴다
새처럼, 울음처럼
별빛 하나로 이 세상을 건너는
조용한 기도의 언어로
나는 시인이었기를
아니, 사람이고 싶었다
평론 — 박성진 시인의 『서시 두 번째 변주곡』
《윤동주의 시혼을 향한 존재적 고백과 언어의 참회록》
박성진 시인의 『서시 두 번째 변주곡』은 윤동주의 원 「서시」를 기념하거나 흉내 내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정신을 깊이 있게 내면화하고, 윤동주가 끝내 이루지 못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고백’*을 21세 기적 감각과 성찰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시적 제의에 가깝다.
시의 시작은 “새벽은 아직 이름도 없이 / 내 안에 길을 틔운다”라는 상징적 언어로 문을 연다.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는 시작을 의식하면서도 **‘새벽’과 ‘이름 없음’**이라는 탈개인적 시간과 존재의 정체성 문제로 옮겨간다. 이로써 윤동주 시인이 품었던 하늘 앞의 부끄러움을 오늘날의 자기 존재 인식과 윤리적 언어로 심화시킨다.
“나는 묻는다 — / 얼마나 더 맑아야 /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윤동주의 원문을 뿌리로 삼되, 질문을 형상화하는 방식에서 고통의 층위가 더욱 심화된다. 이 물음은 단순한 자기 성찰이 아니라, 인간됨의 한계와 시대의 어두움에 대한 윤리적 저항으로도 읽힌다.
후반부에서 “시는 나를 벌하지 않지만 /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구절은, 윤동주 이후 세대의 시인이 품은 시와 존재, 그리고 언어의 죄의식을 드러낸다. 시는 무죄이되, 시를 쓰는 자는 유죄일 수 있다는 모순 — 그것이 곧 윤동주로부터 박성진에게 이르는 시인의 ‘운명’이다.
결말부 “나는 시인이었기를 / 아니, 사람이고 싶었다”는 문장은 모든 시인을 향한 절창이며 동시에 윤동주의 시혼에 헌정하는 진혼곡이다. 윤동주가 ‘시인’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고자 했던 본심을, 박성진 시인은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것이다.
박성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