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서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박성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처럼

by 박성진

박성진-내면의 방랑, 윤동주의 서시



박성진 칼럼니스트의 평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 윤동주 「서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처럼 내면의 방랑으로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는 순간, 독자는 고요하지만 짙은 슬픔의 결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여행, 정확히 말해 영혼의 유배지로 떠나는 청년의 여정이다. 음악으로 비유한다면,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가 바로 그 정조와 가장 가깝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한 이방인이 절망과 상실, 추위를 안고 떠나는 독백의 여정이다. 윤동주의 「서시」도 겉으로는 단정하고 조용한 언어로 쓰였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찾으려는 방랑의 깊은 울림이 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함께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슈베르트의 정서가 윤동주의 “나는 별 하나에 이름을 불러보고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선언과 깊이 겹쳐진다.


특히 「서시」의 시인은 외부 세계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먼저 살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고백은 격정이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의 섬세한 진동이다. 이는 겨울 나그네의 곡들 가운데 ‘Gute Nacht(안녕, 잘 있어)’처럼, 떠남조차 사랑으로 말하는 순결한 절망과도 맞닿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표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윤동주와 슈베르트는 각기 다른 시대와 언어를 살았지만, 둘 다 현실로부터 밀려난 이들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떠남이고, 그 떠남은 고독이며, 그 고독은 결국 자기 자신을 품는 방식이다.


「서시」는 단지 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겨울의 노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끝끝내 자기 안을 걸어가는 한 시인의 발자국. 그리고 그 발자국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처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남는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작곡가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흐의 마태수난곡처럼 윤동주의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