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절망 속에서 태어난 시의 윤리

박성진 칼럼니스트 윤동주 6편

by 박성진

윤동주 쉽게 쓰인 시



박성진 평론


《윤동주의 〈쉽게 쓰인 시〉, 절망 속에서 태어난 시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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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왜 시가 ‘쉽게 쓰였다’고 했는가


〈쉽게 쓰인 시〉는 1942년 2월, 윤동주가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에 유학 중 쓰였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평생 껴안아온 시적 윤리의 모순과 한계를 정면으로 고백한다.

그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왜 시인은 “쉽게 쓰였다”라고 고백했을까?

실제로 이 시는 그 어떤 시보다 가장 어렵게, 가장 절실하게, 가장 아프게 쓰인 시다.


이 제목은 아이러니다.

쉽게 쓰인 시란, 실제로는 ‘쉽게 써져서는 안 되는 시’에 대한 고백이며,

동시에 ‘쉽게 읽히는 시대’를 부끄러워하는 시인의 자성이다.

여기서 윤동주는 자기 시를 고백하면서, 문학 전체를 윤리의 법정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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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식민지의 내면화


이 시의 핵심 장면은 다음 구절에 응축되어 있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육첩방’은 일본식 다다미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좁은 공간이다.

윤동주는 그 좁고 낯선 공간에서조차 자신이 이방인임을 절감한다.

단순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이 아니다.

그는 식민의 구조 안에 내던져진 언어의 유배자, 정체성의 방랑자였다.


“남의 나라”라는 표현은 장소적 고백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소외를 선언하는 시적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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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는 이렇게 쉽게만 쓰여선 안 된다” — 자기반성의 극치


> 시인은 슬퍼도 씨를 뿌려야 한다


시인이 시를 쉽게 쓰는 것은

삶을 쉽게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동주는 이 시에서 자기 자신에게 윤리적 최후통첩을 날린다.

자기 시가 너무 쉽게 쓰였다고 탄식하는 그 순간,

우리는 시인이 자기 안의 무력함, 회피, 체념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였는지를 보게 된다.


이 시는 단지 ‘잘 쓴 시’가 아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양심이 비명을 지르며 태어난 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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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절망 속의 윤리 — 언어의 마지막 선


〈쉽게 쓰인 시〉의 감정은 고요하지 않다.

그 감정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 읊었던

〈서시〉의 윤리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윤리적 자포자기의 문장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 더욱 고귀하다.

그는 부끄러움을 잃지 않기 위해 시를 쓰며,

시를 쓰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윤리적 극한에 도달한 유일한 시인이 된다.


이러한 시인은 한국 문학사 전체에서도 드물다.

윤동주는 시를 포기하지 않되, 시를 믿지 않았고,

시를 사랑하되, 시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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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가며 — 쉽게 쓰인 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쉽게 쓰인 시〉는 제목과는 달리,

윤동주의 시 세계 중 가장 난해하고 깊은 정신적 고백이다.

이 시는 그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도 시의 윤리를 놓지 않으려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너지는 자아 속에서 끝까지 부끄러움을 지키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시가 쉽게 쓰였다는 자책은,

실제로는 시를 쉽게 쓰지 않으려는 자의 가장 처절한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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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진

(시인 · 음악평론가 · 윤동주 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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