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80주기 특집 7편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고통의 시학과 구원의 언어



윤동주 80주기 특집 평론 7


〈십자가〉 ― 고통의 시학과 구원의 언어

박성진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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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전문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이다.

캄캄한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나는 향기로운 풀포기와 같이 피어나리라.


묵묵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누가 나를 죽이더라도

나는 다시 그 길을 택하리라.


나의 십자가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리.

그리고 나의 길을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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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론


“고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피어나는 싹이다”

윤동주의 〈십자가〉는 자의식의 고통, 역사적 억압, 내면의 분열이라는 세 겹의 어둠 속에서 “자기희생의 형상”으로 승화된 언어의 십자가를 세운 시이다.

그에게 ‘십자가’는 기독교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민족적 고통과 윤리적 선택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이 시가 발표된 1941년, 윤동주는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창씨개명을 강요받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며, 그 비애를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 눈여겨볼 시구는 다음과 같다.


> “묵묵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 나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말’을 시로 감당하려는 결단이다.

시인은 단념이 아니라 감내를 택했다. 고난 속 침묵은 윤동주에게 의지의 언어였다.




그리고 마지막 시구:


> “나의 십자가를 /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리.”

여기서 시인은 고통을 과시하지 않는다.

자기희생은 타인의 연민을 유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묵묵히 감내하는 윤리로 승화된다.

이 십자가는 ‘구속’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한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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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의 독자에게


윤동주가 말하는 십자가는 단지 신앙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말해야만 했던 시인의 고통스러운 선택이며,

역사의 침묵 속에서 언어로 꿰매어간 자신의 존엄이다.

우리가 이 시를 오늘 다시 읽는다면,

그건 윤동주가 ‘끝내 감당한 말’을 우리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는 용기,

묵묵히 걷는 내면의 진실 —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감당할 ‘자기 십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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