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도시의 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영혼 없는 도시의 밤



영혼 없는 도시의 밤


― 체르노빌, 프리피야트


박성진 시인


창문마다

사람이 아닌 어둠이 살고 있었다

바람은 숨을 쉬지 않았고

침묵은 벽처럼 두꺼웠다


그날, 도시는

한마디 경고 없이 죽었다

하늘은 무색했고

공기는 무취였고

죽음은 투명했다


아이들은 잠든 채로 이주당했고

어머니의 품은

버스 창문에 남겨졌다

뒤돌아본 자,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프리피야트,

누가 이 도시의 시간을 꺼버렸는가

학교 종은 멈췄고

식탁 위의 국은 식었으며

찬장의 잼병 위엔

방사능이 눌어붙었다


인간은 떠났지만

고요는 떠나지 않았다

사이렌보다 더 날카로운

침묵이 거리마다 박혀 있었다


놀이터의 그네는

아이 대신 유령을 태우고

방독면만 남은 병원 복도엔

‘급히 떠남’의 냄새가 가득했다


체르노빌,

기술의 신전을 쌓던 인간은

자신의 무덤을 직접 설계했다

잿더미는 없었으나

죽음은 완성되어 있었다


오늘도

그 도시는 밤마다 잠들지 않는다

별이 지나는 고요한 상공 아래

영혼 없는 도시가

스스로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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