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 시인의 《별이 빛나는 밤 》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박경자 시인의 《별이 빛나는 밤 》



박경자 시인의 〈별이 빛나는 밤〉


― 불빛으로 그린 고독의 초상


박성진 문학·미술, 칼럼니스트



시 원문


〈별이 빛나는 밤〉 – 박경자


칠흑같이 깊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그 별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랬을까


높디높은 밤하늘의 별들은 적막한

론강 깊은 곳으로 데려와 불기둥을 만들어 주었을까


불타는 불기둥들이

깜깜한 론강을

화안 하게

비추었다네




시 전체에 대한 미술학적·문학적 평론


박경자 시인의 〈별이 빛나는 밤〉은 짧은 시어 속에 감정의 풍경을 겹겹이 쌓아 올린 시적 회화다.

이 시는 단지 ‘밤하늘의 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불빛으로 승화시키는 내면의 그림이다.

시인의 언어는 마치 고흐의 붓끝처럼, 단숨에 감정을 불태우고, 그 불꽃으로 세계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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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 평론


> “칠흑같이 깊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 그 별 친구 삼아 / 외로움을 달랬을까”




시의 도입부는 '밤'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회화적 어둠으로 번역하며 시작된다.

“칠흑같이 깊은 밤하늘”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침잠을 나타낸다.

그 속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등장함으로써, 어둠과 빛의 대비가 내면의 양면성을 형상화한다.


여기서 핵심은 “그 별 친구 삼아 / 외로움을 달랬을까”라는 구절이다.

이 문장은 은근한 고백이자 부재의 감정과의 대화다.

별은 닿을 수 없는 존재다. 즉, 시인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닿지 못할 것과 친구가 되었다는 슬픈 역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관조적이기보다는 내면 깊은 고독의 발화다.



2연 평론


> “높디높은 밤하늘의 별들은 적막한 / 론강 깊은 곳으로 데려와 불기둥을 만들어 주었을까”




이 연에서 ‘론강’이라는 구체적 장소가 등장한다.

론강은 고흐가 〈론강 위의 별밤〉을 그린 곳이며, 그곳에서 고흐는 별빛을 자신의 불면과 고독 위에 펼쳐 놓았다.

박경자 시인은 이 론강을 자신의 정서적 공간으로 끌고 들어와 감정의 무대로 삼는다.


‘불기둥을 만들어 주었을까’라는 표현은 이 시의 미술사적 정점이다.

일반적인 별빛의 묘사는 부드럽고 은은하다.

하지만 박경자 시인은 별을 불처럼 타오르게 한다.

이는 고흐의 격렬한 붓질, 혹은 로스코의 붉은 삭면처럼 감정의 발화 지점이다.

고요한 밤하늘이 불기둥이 된다는 것은, 내면의 감정이 외부 세계로 폭발적 전이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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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 평론


> “불타는 불기둥들이 / 깜깜한 론강을 / 화안 하게 / 비추었다네”




마지막 연은 감정의 절정이면서 동시에 수렴의 순간이다.

불타는 불기둥들이, 어두운 론강을 ‘화안 하게’ 비춘다는 구절은 빛의 변주가 아니라 감정의 전이다.

불은 격렬하고 위험하지만, 여기선 세상을 ‘화안 하게’ 만드는 위로의 빛이 된다.


이 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 순간에서 완성된다.

폭발하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시인은 고요한 빛으로 끝을 맺는다.

이 절제된 결말이야말로 박경자 시 세계의 품격이며, 불꽃같은 감정을 침묵의 미학으로 수렴시키는 고요한 격정이다.



총론: 박경자 시의 시학 — 감정의 회화, 침묵의 형상화


박경자 시인은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빛으로 그린다.

말보다 빛이 앞서며, 감정보다 풍경이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그 풍경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은유다.


〈별이 빛나는 밤〉은 제목부터 고흐의 화폭과 연결되어 있지만,

내용은 고흐보다 더 조용하고, 더 단단하다.

박경자의 별은 소용돌이치지 않는다. 대신 불기둥이 되어 고독의 론강을 밝힌다.

이 시는 단지 시가 아니라, 조용한 정서적 자화상이며, 한 여인이 말하지 못한 침묵의 형상화다.



마무리 발문


박경자 시인의 시는 눈으로 읽히기보다 응시되는 시,

소리보다 색채와 온도로 느껴지는 시다.

〈별이 빛나는 밤〉은 그 대표작으로,

그 별 하나가 당신 마음 깊은 곳까지

화안 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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