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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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박경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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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순백의 아름다운 달항아리
그저 그대 이름 한번
불러 보았을 뿐인데
화아한 미소로
내게 두 손 내밀어 주네
내 흉허물 다
풀어준다 하네
그대는 맑디맑은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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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박성진 평론가
― 순백의 그릇, 순정의 시심(詩心)
박경자 시인의 시 〈달항아리〉는 고요하고 정제된 언어로 한국 고유의 미적 정수를 상징하는 ‘달항아리’를 노래한 서정시이다. 시인은 그저 “그대 이름 한번 불러 보았을 뿐인데”라는 말로, 시와 예술이 갖는 본연의 위로와 치유의 기능을 우아하게 암시한다.
‘화아한 미소’와 ‘두 손을 내밀어’오는 달항아리는 단지 도자기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에게로 다가오는 이상적 존재, 혹은 자기 내면의 고백을 품어주는 무언의 품이다. “내 흉허물 다 풀어준다 하네”라는 시구는 달항아리를 통해 인간 내면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정화시키는 예술의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는 전통에 대한 찬미를 넘어서, 전통이 어떻게 현대의 정서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즉 달항아리는 단순한 고미술품이 아니라 시인에게 있어 절대의 순수, 자비의 형상이다. 결구(結句) “그대는 맑디맑은 달항아리”는 이 모든 시적 체험을 한 줄에 정제해 마무리하며, 시 전체를 한 편의 정물화로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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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적 평론 | 한국미의 정수,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우주
달항아리는 18세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 항아리로, 그 둥글고 비정형적인 형태는 인위적 대칭을 거부하며 자연과 무위(無爲)의 미를 품는다. 담백한 유백색은 조선 도공의 절제미, 정신성, 그리고 비움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가 김환기는 평생 한국의 전통과 우주적 질서를 하나의 화폭에 통합하려 했으며,
그의 작품 속에서 '달항아리'는 자주 우주의 중심축처럼 등장한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點畵) 연작에서 보이듯, 달항아리는 그에게 단지 도자기가 아닌 ‘공간 속의 음률’이었다.
박경자 시인은 이러한 달항아리의 상징성과 정신성을 빌려 시 안에 정제된 한국적 정서를 심는다. 그녀의 시는 조형예술의 침묵을 언어로 번역하며, 그 언어는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 즉 존재의 울림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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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시와 예술, 치유의 공명
〈달항아리〉는 단지 하나의 그릇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내면의 상처를 토로하고, 예술이라는 절대적 맑음 앞에서 해방을 경험하는 심정의 고백이다. 또한 이는 한국적 미감에 뿌리를 둔 순정한 시심이, 미술사적 맥락 위에서 조형 예술과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박경자 시인의 작품 세계는 말의 결을 아끼며, 대상의 영혼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정제된 감각으로 예술과 삶을 연결시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달항아리’는 비워낸 자리에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시인의 언어는 그것을 조용히 감싸는 수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