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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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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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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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라스〉 — 박경자 시인
밤풍경을 즐기는 아를의 밤거리
찐한 에스프레소의
커피 향을 코끝으로 맡으며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풀어보는
밤의 카페테라스
그 가운데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있는
한 남자가 있네
화려한 조명 아래 카페테라스
활기찬 분위기 속에
깡마른 몸을 파묻고
외로움을 떨쳐보려 애를 쓴다
그것이 그에겐
동생이 보내는 팍팍한 생활비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겠지
눈이 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조명과
노란 테라스가 만나면
저리 화려한 빛이 될까
아를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눈부신
카페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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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론 및 미술사적 해설
박성진 평론가
박경자 시인의 〈카페테라스〉는 단순한 여행지 풍경의 묘사가 아닌, 고단한 삶 속에서 마주하는 ‘빛의 위안’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서정시다. 이 시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1888년 작품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를 모티프로 하여, 그 회화적 감수성과 인간적 고독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1. 시인의 관찰력 —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
"찐한 에스프레소의 커피 향", "황금빛 조명", "노란 테라스" 같은 표현은 감각의 언어로 시공간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단순한 관광객의 감상에 머물지 않고, 그 한가운데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있는 한 남자’**를 포착한다. 바로 여기서 이 시의 미학은 시작된다. 아름다운 장면 속의 비극성, 활기 속의 고립감이란 주제는 전통적인 반 고흐 회화의 심상을 그대로 닮았다.
2. 미술사적 배경과 시의 상호텍스트성
반 고흐의 〈카페테라스〉는 프랑스 아를의 밤거리에서 빛과 어둠, 따뜻함과 고독의 대비를 탁월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반 고흐는 별빛과 가스등을 병치시키며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침묵 사이에 놓인 이방인의 감정을 그렸다. 박경자 시인은 바로 이 미술사적 배경을 자신의 시적 공간으로 끌어와, 회화의 조형 언어를 시적 이미지로 전이시켰다.
예를 들어,
> “눈이 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조명과 노란 테라스가 만나면 저리 화려한 빛이 될까”
이 구절은 반 고흐의 대표 색채 전략 — 황색, 푸른 밤, 별빛 — 을 충실히 반영하며, 회화적 감상과 인간적 고독이 충돌하는 지점을 섬세히 포착한다
3. 존재론적 고독과 계급적 풍경
이 시의 탁월함은 ‘한 남자’의 존재가 단순한 도시인의 초상이 아닌, 사회적 맥락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된 점에 있다.
> “동생이 보내는 팍팍한 생활비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
이 대목은 현대 자본주의 도시의 이면, 관광 도시 속 이방인의 처절한 생존을 드러내며, 화려한 문화 이면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 장면은 오히려 반 고흐 본인의 삶과도 맞닿는다. 외로움, 가난, 간헐적인 위로 — 반 고흐 역시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렸기에, 그림 속 카페의 불빛은 실은 가난한 위로였다.
4. 미적 언어로 완성된 시적 조명
마지막 연,
> “아를 밤하늘의 / 별빛보다 더 눈부신 / 카페테라스”
는 그림과 시, 삶과 고독, 빛과 어둠이 정점에서 만나는 지점이다. 시인은 단순히 별을 넘는 인공조명의 찬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작고도 유일한 ‘온기’의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반 고흐가 평생 그렸던 ‘빛의 희망’이, 박경자 시인의 시 속에서 ‘시의 따뜻함’으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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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박경자 시인의 〈카페테라스〉는 고흐의 회화를 빌려와 삶의 고독, 존재의 체온, 그리고 도시의 빛과 어둠을 깊이 있게 시어로 녹여낸 수작이다. 이 시는 미술사적 감각과 시인의 섬세한 내면 탐색이 만나 탄생한, 회화적 시 혹은 시적인 회화라고 부를 만하다. 회화와 시, 과거와 현재,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감각이 하나로 엮이는 고요한 예술의 밤 — 우리는 이 테라스의 한 자리에 앉아, 시인과 고흐의 조명을 함께 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