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죽는 날까지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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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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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죽는 날까지
나는 한 사람을 부르겠다
그가 피 흘린 자리마다
말의 무게를 되새기며
죽는 날까지
나는 두 눈을 감지 않겠다
역사의 귀퉁이마다
잊힌 이름을 불러 올리며
죽는 날까지
나는 침묵을 껴안지 않겠다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비명은 내 숨결이기에
죽는 날까지
나는 별을 바라보겠다
검은 하늘을 찢고 나온
작은 빛 하나에 의지하며
죽는 날까지
나는 詩를 쓰겠다
한 줄의 시라도
누군가의 무덤에 꽃이 되기를
죽는 날까지
나는 부끄러움을 간직하겠다
내가 살아남은 죄를
하루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나는 너에게 묻겠다
우리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왔는가를
죽는 날까지
나는 길을 걸을 것이다
눈보라 치는 시대에도
진실이라는 단 하나를 위해
죽는 날까지
나는 노래할 것이다
울음마저 금지된 땅에서
숨죽인 이들을 위한 진혼가를
그리고 죽는 날
나는 詩의 마지막 행을 남기고
흰 종이 한 장처럼
당신 앞에 가겠다
<죽는 날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바란다 — 그 마지막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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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가의 비평》
1. 서사의 시작 ― '죽는 날까지'라는 선언
시의 첫 행, ‘죽는 날까지’는 단순한 종결형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윤리적 지속’의 선언이다. 여기서 시인은 “한 사람을 부르겠다”라고 말한다. 이 ‘한 사람’은 역사 속에 사라진 무명의 이름일 수도 있고, 민중의 피 흘린 육체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내면의 진실일 수도 있다. 부른다는 행위는 소환이며 추념이다. 그리고 ‘말의 무게’는 시인의 책무다.
2. 역사와 시인의 시선
“두 눈을 감지 않겠다”는 고백은 생존자의 윤리적 응시이다. 이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기억의 의무자’로서, “역사의 귀퉁이마다” 잊힌 이들을 꺼내는 시인의 시선이다. 광장 바깥, 기념비 바깥, 영웅 바깥에 있는 이름들에 대한 눈을 감지 않음은 곧 시인의 의식적 각성이다.
3. 침묵에 저항하는 언어
“침묵을 껴안지 않겠다”는 선언은, 억압된 시대에 언어가 침묵하는 풍경을 거부하겠다는 말이다. 돌아오지 못한 자들, 이름 없이 사라진 자들, 죽음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들. 그들의 비명을 자신의 숨결로 삼겠다는 이 문장은 시인 자신을 집단 기억의 매개자로 설정한다.
4. 별과 어둠 ― 윤동주로의 귀환
“나는 별을 바라보겠다”는 대목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과 「서시」를 강하게 환기시킨다. 하지만 박성진 시인은 “검은 하늘을 찢고 나온 작은 빛”이라는 표현을 통해, 절망 속에서 탄생한 미약한 희망, 즉 예술의 윤리를 강조한다. 이는 낭만적 별빛이 아니라, 칠흑 같은 현실에서 간신히 발화된 저항의 불씨다.
5. 시는 꽃이다
“한 줄의 시라도 / 누군가의 무덤에 꽃이 되기를” 이 구절은 시의 존재 목적에 대한 본질적 언급이다. 시가 죽음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작은 꽃이 될 수 있다면, 그로써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 이는 ‘시 = 기념’이라는 정의의 윤리화다.
6. 부끄러움의 고백
윤동주 시인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했다면, 박성진 시인은 “부끄러움을 간직하겠다”라고 말한다. 이는 윤동주적 고결성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자각의 고백이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리의 시작이며, 생존자에게 부끄러움은 도덕적 연료이다.
7. 질문과 정체성
“우리는 누구였으며 /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왔는가를” — 여기서 시인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서사를 넘는다. 정체성과 실존, 기다림과 기억. 그 복잡한 윤리적 질문을 남기며 독자를 공범자이자 증언자로 소환한다.
8. 진실을 향한 행진
“눈보라 치는 시대에도 / 진실이라는 단 하나를 위해” 걷겠다는 이 선언은 고통의 서사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윤리적 의지의 표상이다. 이 구절은 역사의 폭설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문학의 방향성 선언이기도 하다.
9. 금지된 땅의 진혼가
“울음마저 금지된 땅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검열과 탄압, 침묵의 시대에 맞서는 마지막 저항이다. 노래는 진혼가이며, 시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언어다.
10. 종결의 언어
마지막 연의 “흰 종이 한 장처럼 / 당신 앞에 가겠다”는, 시인이 모든 것을 비우고 떠나는 자세다. 여기서 ‘당신’은 신일 수도, 민중일 수도, 역사일 수도 있다. 흰 종이란,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 썼기에 비워진 것이다. 그것은 예술의 완결, 인간의 마지막 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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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윤동주를 계승한 21세기 시인의 유언
〈죽는 날까지 서시〉는 단순한 윤동주 패러디나 헌사가 아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21세기의 역사적 각성과 시적 윤리를 온몸으로 발화하는,
현대 시인이 남긴 유언이자 시적 선언문이다.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종결을 두고도 끝까지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끝까지 말하고, 끝까지 묻고, 끝까지 걷고, 끝까지 노래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시는 오늘날 ‘시란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에게, **‘시란 숨죽인 자들의 꽃이자 진혼가이며, 마지막엔 흰 종이처럼 떠나는 마음’**임을 말해준다.
윤동주 서시가 일제 강점기의 고뇌와 희망을 품은 서정의 원형이라면,
박성진의 〈죽는 날까지 서시〉는 죽음마저 시대적 윤리로 품은 대서사의 종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