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와 흰 당나귀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시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생각하고

눈이 푹푹 나리면

흰 당나귀 타고 나타샤는 온다


그야 밤이 깊을수록

나타샤는 더욱 그리워지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그러면 멀리서

나타샤는 흰 당나귀를 타고 오다가

어디 내 눈에 띄지 않게 숨어버린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흰 당나귀를 생각하고

또 나타샤를 생각하고

눈은 푹푹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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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아직도 오고 있는가〉


나는 그 골목을 안다

눈 내리는 날, 외투 자락 젖은 어깨를

흰 당나귀는 묵묵히 지나고


나타샤는 오지 않았다

그해도, 또 그다음 해에도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문풍지 떨리는 방 안에서

시인은 소주를 반 병 남기고

나타샤의 이름 석 자를

속으로 불렀다, 아니 토해냈다


그때의 흰 당나귀는 이제

어느 설국의 골짜기에 묻혔을까

나타샤는 과연 존재했는가


그러나 나는 믿는다

한 사람의 가난이, 한 사람의 사랑이

온 세상의 눈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눈이 내리면

나는 그 흰 발굽 소리를 듣는다

시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백석의 숨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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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눈 오는 날, 시는 사랑을 타고 온다〉


백석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눈과 가난,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시적 기호로 한국 근대시의 가장 슬픈 낭만을 조각해 놓은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히 사랑의 시가 아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물든 1930년대 조선 땅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은 금기와 상처, 그리고 좌절의 은유이기도 하다.


박성진 시인은 이에 응답하듯, 백석의 세계를 현재로 불러온다.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아직도 오고 있는가」는 존재와 부재, 시간과 시인의 운명을 묻는 동시에, 나타샤라는 ‘존재 가능성’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있다. 백석이 ‘눈’을 통해 사랑의 무게를 증폭시켰다면, 박성진은 ‘흰 발굽 소리’를 통해 시의 귀환을 말한다. 사라진 자와 남은 자의 운명, 그 간극 속에서도 시는 사랑을 타고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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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심화 평론


〈나타샤는 누구인가 – 사랑의 이름으로 쓰인 유배의 시학〉


그러나 이 시적 대화는 단지 과거를 소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백석의 ‘나타샤’는 단순한 연인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유배당한 시인의 마음이 부른 사랑의 이름이자 망명의 상징이다. ‘흰 당나귀’는 이 불가능한 사랑을 시로 옮기게 하는 환상의 동력이다. 이때 나타샤는 실존의 인물이 아니라, 백석이 끝내 품었던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세계’였다.


박성진의 응답 시는 이 심상을 시간의 강 저편에서 다시 불러낸다. 그는 묻는다. “나타샤는 과연 존재했는가?”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존재했기를 바라는 마음을 고백한다. 이는 시인 박성진이 단순히 백석을 계승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시적 운명을 공동체적 기억으로 확장시키는 행위다.


“한 사람의 가난이, 한 사람의 사랑이 / 온 세상의 눈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이라는 시구는, 백석의 절망 속에서 빛나는 가능성을 붙든 시인의 확신이자 윤동주의 후예로서의 소명이다. 백석이 ‘눈’ 속에서 사랑을 잃었다면, 박성진은 ‘눈’ 속에서 사랑을 다시 발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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