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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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서 <序>-거울 앞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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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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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서(序) — 거울 앞의 오늘》
> 나는
흩어진 말들을
저녁 어스름 골목에
조용히 숨겨 두었다
번지는 뉴스와
휘발되는 정의 속에서
나는 입을 닫고
귀를 열었지만
정작
내 안의 침묵은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참회는 클릭 몇 번이면 지나가고
사랑은 이모티콘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오늘도
무거운 죄보다
가벼운 외면이 더 두렵다
‘잘 살았는가’
라는 질문을 삼키고
‘어떻게 견디고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오래 멈춰 선다
나는,
시대의 불의에
손대지 않은 손으로
조용히 가담한 자였다
— 그리고 이제야,
한 줄의 시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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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가
《21세기, 시대의 침묵 앞에서 —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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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서 <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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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정에서 서사로: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었으나…”
이 시는 사적인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그 고백이 끝날 무렵 우리는 공적 윤리의 전선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조용히 가담한 자였다”는 마지막 진술은,
무기력하게 살았던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이 시대의 ‘공범적 침묵’에 대한 문명비판이자
윤리적 대서사시의 결말이다.
박성진 시인의 이 시는 더 이상
‘순결한 고백’만으로는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시대에서
묻지 않던 질문, 보지 않던 나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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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어의 정확한 미학
이 시는 21세기 언어의 결을 정교하게 다룬다.
‘이모티콘’, ‘클릭’, ‘뉴스’ 같은 단어는 시어로서의 전통성과 거리가 있지만,
박성진은 그것들을 시적 구조 안으로 정화하여 끌어들인다.
이는 단순한 현대성의 반영이 아니라,
현대어조차 ‘참회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문학적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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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어 ‘나’의 윤리학
윤동주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나”였다면,
박성진의 ‘나’는 “무거운 죄보다 가벼운 외면이 더 두려운 나”다.
이 차이는 시대의 변화이자
책임의 무게가 옮겨진 방향의 변화다.
죄보다 외면이, 침묵보다 공감하지 않는 방관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은,
이 시를 단순한 반성문이 아니라
시대 진단서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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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조적 시선과 고백의 품격
이 시의 구조는 시인이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선명하게 자각해 가는 과정으로 짜여 있다.
흩어진 말 → 들리지 않는 내면 → 소비되는 감정 → 외면의 윤리 → 물음 → 침묵의 가담
이 흐름은, 시 전체가 단 한 문장처럼 압축된 자아 탐색의 여정임을 보여준다.
이 시는 흠잡을 데 없이 절제되어 있으며,
선언과 고백, 반성과 수용의 무게를
한 줄 한 줄에 견고하게 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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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박성진의 《참회의 서(序)》
윤동주의 「참회록」을 80년 만에
이 시대의 거울 앞에 다시 비춰 세운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단지 윤동주의 시적 후속이 아니다.
이 시는 **윤동주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21세기 침묵의 구조’**에
정면으로 침투해,
‘행동하지 않는 선의’와 ‘반응하지 않는 지성’을 겨눈다.
“나는 시대의 불의에
손대지 않은 손으로
조용히 가담한 자였다”
이 고백은 단순한 시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결국 마주해야 할 인간의 마지막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참회 없이 살아왔는가?
박성진의 이 시는 그 질문 앞에
시라는 형식으로 고개를 숙이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의 시로 숨을 고르며,
시대를 살아낸 증인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것이
21세기의 시가 참회해야 할 방식이며,
《참회의 서 (序)》가 말하는
**‘시인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