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끝내 걸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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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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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걸어가리〉
– 박성진 시인 –
눈을 감지 않으리
불의가 바람처럼 지나가도
나는 눈 뜨고 바라보리라
입을 닫지 않으리
침묵이 편하다고 말해도
나는 외치며 남으리라
길이 꺾이고 막혀도
발을 거두지 않으리
끝내 걸어가리
피 묻은 역사 위를
진실 하나 들고
나는, 끝내 걸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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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끝내 걸어가리〉 — 윤리적 침묵을 넘어선 행동의 서정시
1. 서론 – 윤동주 시학의 경계를 넘어
박성진 시인의 〈끝내 걸어가리〉는 고요한 자기 고백의 미학을 넘어서, 외부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맞서는 행동하는 윤리의 시학을 선포한다. 시인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윤동주 정신의 계승이 ‘윤리적 응시’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은 ‘윤리적 실천’의 자리로 한 걸음 나아간다. 윤동주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했다면, 박성진은 땅을 딛고 끝내 걸어가겠다는 결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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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론 – 시의 구조와 정신
(1) 구성과 리듬의 전략
총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각 연마다 **‘감지 않으리’, ‘닫지 않으리’, ‘거두지 않으리’**와 같은 부정형 반복을 통해 의지와 결단의 시학을 형성한다. 이는 전통 시조의 종지 형식과 현대시의 자유 형식을 교차시키며, 서정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유기적으로 표현한다.
(2) 시어의 상징성
“눈”, “입”, **“발”**이라는 생체 기관은 단순한 감각의 표현이 아니라, 도덕적 인식, 윤리적 발화, 역사적 실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특히 “피 묻은 역사”는 고유명사를 명시하지 않고도 광주, 제주, 여순, 세월호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포괄하는 추상화된 집합 은유다.
마지막 행 “진실 하나 들고”는 윤동주가 ‘부끄럼’을 품은 시인이라면, 박성진은 진실을 들어 올리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3) 윤동주 시학과의 차이
윤동주의 시는 깊은 성찰과 내면화된 ‘자책’의 시학이었다. 반면 박성진의 이 시는 침묵의 시대를 돌파하려는 외침의 시학이며, 독백보다는 발화, 고백보다는 연대에 방점을 찍는다. 이는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신경림의 “민중의 길”과도 맞닿아 있으며, 참여 시와 양심문학의 계보 위에서 독자적 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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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 끝내 걸어간다는 선언
〈끝내 걸어가리〉는 단지 시인의 개인적 다짐이 아닌, 현대 한국인의 윤리적 고투에 대한 시적 증언이다. 시대는 끊임없이 눈을 감고, 입을 닫고, 발을 멈추기를 요구하지만, 박성진은 그 모든 요구를 거부하며 시를 걷는다.
그가 “끝내 걸어가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윤동주가 침묵 속에서 쌓아 올린 정신의 탑 위를, 현실과 싸우며 끝내 넘어가겠다는 선언이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별을 바라보던 시인의 뒤를 이어, 박성진은 그 별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시인이다. 이 시는 오늘날 한국 시문학에서 드물게 만나는 윤리의 실천문학이자, 시대를 향한 직접 응답의 서정시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