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동이 걸리다

박성진 시인,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다시 시동이 걸리다》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문학박사 곽혜란 시


〈다시 시동이 걸리다〉



자동차 시동이 걸렸다 안 걸렸다

오늘은 아예 걸리지 않는다

배터리를 교환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잘 나간다

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사람도 더 이상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교환할 수 있는 배터리가 있다면

세상의 슬픔도 눈물도 반으로 줄 텐데


나는 혈육과 영영 이별을 해본 사람인데도

일상의 위대함을 자주 잊고 산다

매일 새날이 시작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아침의 기적 앞에 지금 막 힘찬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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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학평론


― 시동을 건다는 것은, 다시 살아낸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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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에서 철학을 건져올리는 시인의 시선


곽혜란 시인의 〈다시 시동이 걸리다〉는 단순한 기계적 현상 하나에서 인간의 본질적 생애를 이끌어낸다. ‘자동차 시동’은 물리적 작동을 넘어 ‘삶의 재시작’이라는 존재론적 선언으로 확장된다. 이 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일상의 기적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우며, 삶의 재점화가 가능한 존재로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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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연: ‘자동차 시동’에 담긴 생명 회복의 은유


> 자동차 시동이 걸렸다 안 걸렸다 / 오늘은 아예 걸리지 않는다

배터리를 교환했더니 /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잘 나간다

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자동차 시동은 곧 ‘생동’의 상징이다. ‘걸렸다 안 걸렸다’는 반복은 생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특히 “아예 걸리지 않는다”는 구절은 죽음 혹은 무력감을 암시하며, 단절된 삶의 흐름을 상징한다. 하지만 배터리 교환이라는 작지만 결정적인 개입으로 ‘세상 잘 나간다’는 구절은 기적처럼 되살아나는 생명력을 암시한다. 여기서 ‘차가 살아난다’는 말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삶의 재생, 희망의 복귀를 시적으로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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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연: 인간 존재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성찰


> 사람도 더 이상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교환할 수 있는 배터리가 있다면

세상의 슬픔도 눈물도 반으로 줄 텐데




이 대목은 시의 중심 철학을 드러낸다. 인간 역시 지치고, 꺼지고, 무기력해지는 존재이다. 시인은 여기에 ‘배터리’라는 매개를 빌려 치유와 회복, 그리고 정서적 재충전의 필요성을 노래한다. 물질의 힘을 빌려 표현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심리적, 영적 회복에 대한 갈망이다. 이 구절은 삶의 절망 속에서도 어떤 돌파구—‘다시 충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는 인간적 희망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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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연: 일상이라는 기적의 부활


> 나는 혈육과 영영 이별을 해본 사람인데도

일상의 위대함을 자주 잊고 산다

매일 새날이 시작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아침의 기적 앞에 지금 막 힘찬 시동을 건다




시인의 자전적 고백은 이 시 전체의 정조를 결정짓는다. ‘혈육과 영영 이별’이라는 구절은 깊은 상실을 내포한다. 상실을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의 위대함’을 자주 잊고 산다. 바로 이 지점이 곽혜란 시인의 시적 윤리이자 철학이다. 매일 맞이하는 새날, 흔하디흔한 아침이 ‘기적’이라는 감각을 회복할 때, 우리는 삶을 사랑하게 된다. ‘힘찬 시동’은 단순한 기계의 작동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매일 다시 살아내는 의지의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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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족은 기적이다’라는 시집의 주제와의 연결


이 시는 시집 전체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가족’은 피로 엮인 관계이자, 매일을 견디는 힘이며, 기적의 실체이다. 시인이 말하는 ‘배터리’는 어쩌면 가족, 혹은 관계 속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힘은 타인과의 따뜻한 연결에서 비롯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삶을 견디는 어떤 고요한 연대의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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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시인은 사소함으로부터 존재의 중력을 이끌어낸다


곽혜란 시인은 ‘작은 현상’을 통해 ‘큰 본질’을 포착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시동이 꺼졌다가 다시 걸리는 자동차에 빗대어, 꺼져가는 인간의 마음, 꺾인 존재의 의지를 다시 일으키는 ‘기적의 순간’을 노래한다. 기술적 사물의 메타포를 인간 내면의 구조로 연결시키는 솜씨는 시인의 문학적 내공을 입증한다.


‘다시 시동이 걸린다’는 말은 곧,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으며,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는 믿음의 시학이다. 우리는 그 기적 위에 서 있고, 그 이름은 ‘가족’이며,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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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곽혜란 시인의 시는 정제된 언어 속에 묵직한 통찰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기적을 외부로부터가 아닌,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내부’에서 발견한다. 그 발견은 시인의 겸허함이며, 동시에 독자에게 주는 삶의 자각이다.

박성진 평론가는 이 시를 “다시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바치는 시적 응원가”로 해석하며, 이 작품을 오늘의 한국시가 품어야 할 존중, 품격, 위로의 시학이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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