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갈라진 땅-분단 시대의 쉽게 쓰인 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분단 시대의 쉽게 쓰인 시



《쉽게 갈라진 땅 — 분단시대의 쉽게 쓰인 시》


박성진 시


나는 쓰지 않았다

쉽게 쓸 수 있었던 말을

남과 북이

피처럼 나뉘던 그 밤에도


펜은 종이를 뚫고

붉은 선을 그었다

지도 위의 상처처럼

형제의 눈물로 번져갔다


입술은 굳었고

침묵은 총알처럼 날았다

그때도, 지금도

내 말은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너무 많은 피와

너무 적은 용서

무거운 이름들

너머로 꾹꾹 눌러쓴 단어들


한쪽은 자유라 말하고

한쪽은 해방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 둘 모두에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말이 아니라

침묵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질수록

내 문장은 더 느려졌고

은유는 검열을 피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 땅의 반쪽이

저 땅의 반쪽을 용서하기 전까지

나는 쉽게 시를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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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분단시대의 ‘참회록’으로서의 쉽게 쓰인 시》 — 박성진 시인을 중심으로


1. 윤동주의 고백을, 민족 분단의 양심으로 이식하다


윤동주의 〈쉽게 쓰인 시〉는 내면의 부끄러움과 언어의 무력감을 고백하는 시다. 박성진 시인은 이 시의 형식을 빌어,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사의 가장 비극적인 내상을 시로 고백한다. 제목부터가 “쉽게 갈라진 땅”이라 하여, 조국의 분단을 ‘쉽게 쓰인’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찢긴 현실’로 비튼다. 이는 윤동주 시가 언어의 윤리성에 천착했다면, 박성진 시는 민족적 윤리의 부채감에 응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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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도 위의 상처 — 지리에서 윤리로


2연 “펜은 종이를 뚫고 / 붉은 선을 그었다”는 구절은 지도 위 38선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붉은 선은 단지 물리적 경계가 아닌 ‘종이를 찢는 윤리적 폭력’이다. 이 상처는 “형제의 눈물”로 번져간다. 즉, 남북 분단은 개인적 상처이자 집단적 기억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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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어와 침묵 사이 — 분단문학의 검열


4연의 “너무 많은 피와 / 너무 적은 용서”는 이념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폭력이 되었는지를 암시한다. 이는 윤동주가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 자책했던 구조와 겹친다. 박성진 시인은 그 구조를 시대 전체로 확대한다. “내 말은 함부로 쓸 수 없었다”는 구절은 곧 ‘검열’이 아니라 ‘자기 검열’이며, 이는 분단문학의 핵심적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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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방이자 자유 — 남북의 두 단어, 하나의 죄


박성진 시는 “한쪽은 자유라 말하고 / 한쪽은 해방이라 불렀다”라고 쓴다. 두 체제가 선택한 서로 다른 언어는, 같은 민족이 서로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시인은 “그 둘 모두에 / 죄를 지은 것 같았다”라고 자백한다. 이 고백은 윤동주의 참회에 대한 분단문학적 확장으로, 시인의 존재론을 정치의 윤리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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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은유는 유일한 탈출구 — 분단문학의 문체론


“은유는 검열을 피한 유일한 탈출구였다”는 구절은 분단문학의 문체론을 집약한다. 시인은 사상의 죄인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직설 대신 은유로 진실을 전해야 했다. 이것은 박성진 시인의 시에서 가장 치열한 문학적 전략이자, 가장 슬픈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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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쉽게 쓰인 시’를 다시 쓰는 일 — 오늘의 문학과 책임


윤동주는 쉽게 쓰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박성진은 그 문장을 21세기 한반도에서 다시 읽는다. 그러나 그는 윤동주보다 더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쉽게 시를 / 쓸 수 없었다”는 고백은 윤동주의 반대방향에서 시작해, 다시 윤동주의 양심으로 돌아온다. 이 대칭적 윤리는, 분단문학의 오늘을 살아가는 시인들의 숙명을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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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박성진의 〈쉽게 갈라진 땅〉은 윤동주의 시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민족의 상흔을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쓰는 분단문학의 역작이다. 이 시는 단순한 정치적 비판이 아니라, 언어적 양심의 경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고백문학이다. ‘쉽게 쓰인 시’를 경계하며, 끝내 ‘쉽게 용서하지 못한 시’를 창작한 시인은, 한반도의 시적 양심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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