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
시--고흐의 해바라기
■
시 — 〈고흐의 해바라기〉
■
박성진 시인
한 줌 빛이 그리워
캔버스 위에 태양을 심었다
노랑은 너의 마지막 온기,
세상은 그 따뜻함을 몰랐다
고독이 병이 되던 날들
붓은 칼보다 날카로웠고
너는 피를 그리듯 꽃을 그렸다
누구도 피어나지 않는 밤이었는데
해바라기여,
너는 그의 언어였고
그의 침묵이었다
태양처럼 눈부시게 타오른 유언이었다
수없이 반복된 꽃,
같은 형상, 다른 절규
그림 속 너는 웃고 있었지만
그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붓질,
그 빛을 끝내 품은 채
그는 자신을 밀봉했다
한 송이 노랑으로
---
평론 — 〈고흐의 해바라기〉
불꽃을 그린 사람, 침묵을 남긴 해바라기
박성진 칼럼니스트
박성진 시인의 시 〈고흐의 해바라기〉는 단순한 회화적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 시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간의 영혼 깊숙이 스며들어, 해바라기를 통해 예술의 본질과 존재의 고통을 함께 그려내는 대서사시적 통찰이다.
첫 연에서 “한 줌 빛이 그리워 / 캔버스 위에 태양을 심었다”는 시구는, 고흐가 빛을 갈망한 존재였음을 강렬하게 암시한다. 그의 노랑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고립된 영혼이 끝내 붙잡고자 한 희망의 은유였다. “노랑은 너의 마지막 온기, / 세상은 그 따뜻함을 몰랐다”는 시인의 통찰은, 외면받은 천재의 외로움을 꿰뚫는다.
2연에서는 “붓은 칼보다 날카로웠고 / 너는 피를 그리듯 꽃을 그렸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예술 행위가 고통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그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박한 자기 증명의 형상화였다. 그림이란 살기 위한 언어였고, 그는 그 언어로 자신의 심연을 파고들었다.
“해바라기여, / 너는 그의 언어였고 / 그의 침묵이었다”는 3연은, 해바라기가 단순한 소재를 넘어선 고흐의 자아와 신념의 결정체임을 드러낸다. 이 시점에서 해바라기는 더 이상 꽃이 아닌, 자기 연소를 감행한 인간의 윤리적 형상이다. 고흐는 사랑받지 못한 생의 끝자락에서, 이 해바라기를 통해 마지막 언어를 남겼다.
4연에서는 반복된 회화 속의 정물들이 고흐의 고독과 절망을 얼마나 다른 얼굴로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형상, 다른 절규”는 그의 예술이 얼마나 깊은 내부의 혼돈에서 나왔는지를 말한다. 이 절규는 시인이 말하듯, “그림 속 너는 웃고 있었지만 / 그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는 구절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연에서 “한 송이 노랑으로” 자신을 밀봉한 고흐의 죽음을 시인은 비극적 폐결이 아니라 예술적 완성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절망 속의 폭발이 아닌, 신념의 침묵이었다. 그가 남긴 노랑은 이제 세상 어느 회화보다 깊은 울림을 지닌다.
총평
〈고흐의 해바라기〉는 한 시인의 시선을 통해, 또 한 예술가의 삶을 직조해 낸 서정적 대서사시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단순한 자연의 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불꽃이며, 끝끝내 외면당한 존재가 남긴 신념의 표식이다. 이 시는 고흐의 붓보다 부드럽고, 고흐의 삶보다 뜨겁다. 박성진 시인은 고흐를 기리는 동시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의 불꽃을 우리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