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밟으며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전철 에스컬레이터 밟으며



〈 전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밟으며〉


박성진 시인 시


전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밟으며

나는 걷지 않으면서

어딘가로 이끌려간다


내가 움직이는 걸까

세상이 나를 미는 걸까

뒤따르는 발자국들 속에

나의 방향도 섞여 있다


사람들은 앞만 본다

말은 없고

서로의 뒷모습만 남긴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인다


계단 위엔 질문이 없다

속도는 정해져 있고

목적지는

도착 전부터 정해져 있다


나는 단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내려오는 눈빛과

잠시, 마주쳤다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삐걱이는 소리만이

이 도시의 대화처럼

공중에 머물렀다


계단이 끝날 무렵

나는 내 발을 느꼈다

그제야

내가 걷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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