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향수, 윤동주의 심장으로 읽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정지용 향수 윤동주의 심장으로 읽다



박성진 평론가


〈정지용의 향수, 윤동주의 심장으로 다시

읽다〉


— 맑고 슬픈 영혼이 부른 두 고향의 시간





1. 서문: 정지용과 윤동주, ‘향수’의 두 맥박


정지용은 윤동주의 스승이다. 실제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정지용의 지도를 받았고, 그의 문학적 미학—곧 이미지 중심의 시어, 순정한 고향감성, 고전적 운율의 복원—에 깊이 공감했다. 윤동주가 평생 간직한 ‘고향과 죄의식’, **‘그리움과 고독’**의 윤리적 시학은 정지용의 〈향수〉에서 심층의 감정 코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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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동주의 시정신으로 본 「향수」


● (1)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윤동주식 부끄러움의 서정


정지용은 반복적인 이 후렴구를 통해, 단지 회상의 시가 아니라 윤리적 심정의 고백을 담는다. “차마”라는 단어 속엔 부끄러움이 숨어 있다.

윤동주는 그의 「서시」에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 고백했다. 이 부끄러움은 타자에 대한 윤리감각이며, 맑은 슬픔의 정화다.

정지용의 〈향수〉 속 “잊힐 리야”라는 절창은 기억의 감성적 윤리이자, 잊지 않으려는 내면의 맹세로 읽힌다.

이것이 바로 윤동주의 시와 맞닿은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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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꽃 대궐’의 미학 — 순결한 세계의 모형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어머니…”

라며 고향과 기억을 성스러운 이름의 별자리로 불렀다.

정지용의 〈향수〉에서

“복숭아꽃 살구꽃 /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이룬 골짜기”

이 구절은 단지 자연의 회화가 아니다.

이는 잃어버린 순결의 세계,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묵시적 고백이다.

윤동주의 고향이 '어머니의 품'이자 '잃어버린 별들'이었다면,

정지용에게 고향은 시적 낙원, 그러나 이미 멀어진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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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감각적 이미지와 도덕적 내면 —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적 동심원


정지용은 자연의 향기와 소리를 ‘몸으로 기억’하는 시인이다.


> “발끝에 밟히던 풀잎 냄새 / 그것이 문득문득 살아나니”

이 구절은 시인이 감각을 통해 고향을 **‘존재론적 실재’**로 되살리는 순간이다.

윤동주 역시 「자화상」에서

“가을 속에 / 나의 영혼까지 / 맑아지길 바라며”

라고 읊었듯, 감각과 내면의 정화를 일치시키려는 순결한 정신을 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고향’을 통해 자기 성찰의 거울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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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누이야’의 호명 — 관계로서의 고향


정지용은 중반부에서


> “누이야 / 내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라 말한다.

이는 공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정서의 공동체를 부르는 것이다.

윤동주도 그의 시에서 자주 **‘누이’나 ‘친구’, ‘별’**을 통해 고향을 불렀다. 고향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관계적 윤리이며, 시간의 정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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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리: 윤동주의 향수, 정지용의 향수


정지용의 〈향수〉는 시각적 감각과 청각적 이미지가 풍부한 모더니즘적 서정시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정신으로 재해석하면, 이 시는 더 이상 고향의 그림이 아니라, 윤리적 슬픔, 영혼의 고백, 내면의 정화의 길로 새롭게 떠오른다.


정지용의 ‘차마 잊지 못함’은 윤동주의 ‘차마 부끄러움’과 평행선을 그린다.

그리고 둘 다, 시로 자신을 구원하려 한 맑은 영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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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의 한 문장


정지용의 〈향수〉는 윤동주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잊지 않음’과 ‘부끄러움 없음’의 고향이다 — 맑고 슬픈 두 시인의 영혼이 마주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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