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보는 안목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통일을 보는 안목



시 원문


〈■

통일을 보는 안목〉


– 박성진 시인 시


안과 나의 눈 사이

보이지 않는 민들레 씨앗이 흩날린다

빛보다 먼저 도착하는 그리움의 눈망울


심안은 묻는다

이 땅의 경계는 누가 그었는가

떨리는 가슴에 들숨처럼 흐르던 철조망


영안은 본다

총알보다 빠르게 꺾인

꽃잎 하나의 신음조차, 새벽의 경계선을 넘어


밝은 시력은 말이 없다

분단의 사막 너머로

초록빛 약속들이 자라나는 걸 보았으니


눈은 둘인데

왜 하나로만 보는가

남과 북, 저편과 이편의 경계를

내 눈에선 지운 지 오래다


눈은 마음을 품고

마음은 다시, 미래를 껴안는다

통일은 멀지 않다

볼 수 있는 자에게는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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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문학평론


1. 연별 해설


1연:

‘안과 나의 눈 사이’라는 첫 행은 물리적 시력(눈)과 정신적 시선(심안) 사이의 틈을 조명한다. ‘민들레 씨앗’은 보이지 않지만 분단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소망과 기억의 상징으로, ‘빛보다 먼저 도착하는’ 그리움은 시공을 초월한 통일의 염원이다.


2연:

심안(心眼), 즉 마음의 눈은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이 땅의 경계’는 정치적,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이며, ‘떨리는 가슴’과 ‘들숨’은 숨죽인 민중의 삶과 내면의 고통을 형상화한 시어이다. 철조망은 여전히 폐부를 파고드는 현실이다.


3연:

영안(靈眼)은 육체 너머의 통찰을 가진 눈으로, ‘총알보다 빠르게’ 무너지는 생명과 꿈을 직시한다. ‘꽃잎 하나의 신음’은 희생된 무고한 생명을 상징하며, ‘새벽의 경계선’은 남북을 나눈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들려오는 절규로 읽힌다.


4연:

밝은 시력은 말하지 않는다. 육체적 시력을 뛰어넘어, ‘분단의 사막’ 너머에서 피어나는 ‘초록빛 약속’은 통일의 희망, 새로운 생명력의 상징이다. 진정한 시력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5연:

‘눈은 둘인데 왜 하나로만 보는가’는 이중성의 자각이다. 한쪽 눈만으로 남북을 보는 외눈박이 시선을 비판하며, ‘경계를 지운’ 시인의 선언은 곧 통일을 사유하는 창조적 행위로 읽힌다.


6연:

마지막 연에서는 눈과 마음, 미래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통일은 멀지 않다’는 선언은 비전이 아니라 직관의 실현이며, ‘볼 수 있는 자’는 단순한 육안이 아닌 심안과 영안을 지닌 자로, 통일을 이미 실존적으로 받아들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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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 비평


이 시는 단순한 정치적 통일을 넘어서, 통일을 인간 내면의 비전과 감각의 재구성으로 접근하고 있다.

‘심안–영안–밝은 시력’이라는 삼단 구조는 시각의 진화를 보여주며, 그것은 곧 인식의 변화와 통일 감각의 심화를 의미한다.


박성진 시인은 경계와 단절을 철조망이나 국경선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시선과 인식의 결여로까지 확장시킨다. 분단이란 외적 조건만이 아닌, 마음의 시야를 가리는 내적 억압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통일을 “미래에 오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온 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알아채는 실재”로 천명한다. 이는 문학이 단순한 예언이 아닌, 실현된 진실을 바라보는 안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탁월한 미학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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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총평


박성진 시인의 〈통일을 보는 안목〉은 오늘의 분단 현실을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보는 자’에서 멈추지 않고, ‘보게 하는 자’로 전환시킨다.


이 시는 단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넘어서, 어떻게 볼 것인가, 어디에 눈을 맞출 것인가, 무엇이 이미 와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문학은 때로, 현실보다 먼저 미래를 보고 그 가능성을 미리 말해주는 창이다. 박성진 시인은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자에게 통일은 이미 와 있다”라고 단언하며,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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