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윤동주라면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내가 윤동주라면



박성진 산문시


〈내가 윤동주라면〉


— 1939년, 거울 앞의 고백


내가 윤동주라면,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비늘처럼 벗겨진 조국의 하늘 아래,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나를 응시하며.

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살리는가, 아니면 죽이는가.

나는 내 안의 누군가를 매일 밤 묻고 또 묻는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은 피곤하고 침묵에 젖어 있다.

나는 민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 단어는 금기어이자 동시에 신의 이름 같아서,

한 번 외치면 두 번의 죄를 짓는 듯한 두려움에 떨게 된다.

어제는 한 친구가 사라졌다.

형무소냐, 만주냐, 이름 없는 벌판이냐.

어디든 그곳에선 시조차 자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무력한 시인, 자음과 모음의 망루에 올라

매일 밤 고백하는 사람,

그러나 나를 구원하는 것은 아무도 없다.

기도는 닫혔고, 양심은 날마다 희석된다.

내가 윤동주라면, 나는 시를 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시를,

이름을 쓰지 못한 자들을 위한 시를.

나는 그렇게 지워지고 싶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단지 한 구절로 살아남는 존재.

내가 윤동주라면, 나는 오늘도 나를 부정하면서

나를 가장 정직하게 쓰는 일에 헌신할 것이다.

시는 핏자국이고, 언어는 옷자락이며,

그 속에 묻힌 내 영혼은 언젠가 살아날 것이다.

그날까지 나는 나를 매장하고 또 파낸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종이에 새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쓰기로 했다.”

내가 윤동주라면, 나는 오늘 죽고 내일 다시 시로 태어난다.



---


평론:


〈자화(自畵)와 자성(自省)의 경계에서 쓰는 시 — 박성진의 ‘내가 윤동주라면’ 해석〉


박성진 시인의 산문시 〈내가 윤동주라면〉은 단순한 헌정이나 모방을 넘어서, 윤동주의 정신을 21세기 언어로 새롭게 부활시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윤동주의 내면을 단지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동주였다면’이라는 존재적 동일화를 통해 자기 시대의 비극과 윤리의식을 함께 껴안는다.


시의 구조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환기시키며, ‘거울’과 ‘자아의 응시’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박성진은 거울에 비친 자아를 한 개인의 초상으로 그리지 않고, 민족의 부끄러움과 침묵을 껴안은 다중적인 정체성으로 풀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부정’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는 고통스러운 윤리의 태도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쓰기로 했다.”는 결미는 시 전체의 핵심 진술이자,

윤동주가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남긴 정신과도 조응한다.

박성진의 이 산문시는 시란 무엇인가, 쓰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다시 제기하며,

윤동주의 ‘내면의 고고함’을 오늘의 시인의 양심으로 계승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별을 다시 세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