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햇살, DMZ에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여름 햇살, DMZ에서



《여름햇살, DMZ에서》


박성진 시인 · 윤동주 연구자


햇살이 덜컥 문을 열고

철조망 위에 발을 올린다

나는 그 빛의 발소리를 따라

한 뼘씩, 분단을 걷는다


비무장지대의 풀잎은

총구의 침묵보다 더 푸르다

총탄을 모른 채 자라는 들꽃에게

나는 그리움이라는 물을 준다


여름이다

두 팔 벌린 산들이

서로를 안고 싶어 안달하는 계절

소쩍새가 부르는 반도

밤이면 북쪽에도 울릴까


이 꺾인 허리를 가진 지도가

곧게 펴질 날을 위하여

나는 종이비행기 하나를 접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그 문장을 적어 날려 보낸다


태양은 국경을 모른다

햇살은 사선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경계를 긋는다

그러나 사람만이 그 경계를 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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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시는 윤동주의 시 「서시」의 한 구절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윤동주의 정신, 즉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는 의지’와 연결된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2연에서는 ‘철조망’과 ‘빛’의 대비를 통해 무력과 생명의 교차를 시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빛’의 이미지는 여기서 분단을 밝히는 희망의 실마리로 전환됩니다.


3~4연에서는 DMZ에 피어난 생명들을 통해 분단의 비정함을 초월한 자연의 순수성과 회복력을 강조합니다. ‘소쩍새’는 고전 시가와 윤동주의 상징체계 모두에서 슬픔과 그리움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5~6연에서는 시인이 종이비행기에 평화의 문장을 실어 하늘로 띄우며, 실천적 상상력으로 통일의 가능성을 앞당기고자 합니다.


마지막 연의 문장은 윤동주가 추구한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와 통일 염원을 절묘하게 합쳐, 윤동주의 윤리적 인간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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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 시는 여름 햇살이라는 생명의 은유를 통해 DMZ에 깃든 평화의 가능성을 노래하며, 윤동주 시인이 꿈꾸던 순결한 세계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동시에, 윤동주의 시어를 계승한 언어윤리의 실천이 오늘날 통일을 앞당길 문학적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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