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분단보다 오래된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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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층의 침묵 — 분단보다 오래된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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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 윤동주 연구자
나는 땅 아래 귀를 댄다
총칼보다 오래된
침묵의 지층이 거기 있었다
거기는 울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율은 분명히 있었다
말해지지 않아
더 깊은 진실로 내려앉은 고요
누군가는 1953,7,27 일
휴전선 협정을 말하지만 지층은 오히려
단일한 대륙이던 시절을 기억했다
우리는 분단을 기억하지만
땅은 분열을 모른다
조용히 켜켜이 쌓인 암석들
그 사이사이 숨어 있는 무수한 별똥들의 조각들 침묵은, 말을 삼킨 언어의 묘혈(墓穴)이다
나는 이제야 듣는다
땅이 뿜어내는 소리 없는 시위
“분단은 사건이 아니라,
침묵 위에 세운 흔들리는 벽이다”
지층은 부끄러움으로 움직였다
내 심장이 쿵쿵 울릴 때마다
지층이 함께 떨리고 있었다
분단보다 오래된 고요
그 아래,
윤동주의 어둠도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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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지층의 침묵》 — 침묵은 말보다 깊은 진실이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 윤동주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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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의 침묵〉**은 박성진 시인이
윤동주의 시학 — ‘침묵’과 ‘부끄러움’ — 을 자연윤리의 차원으로 확장한
통일시 대서사시 3부작의 서문에 해당한다.
이 시는 소리 내지 않는 존재들이
말보다 더 강하게 시위를 하고 있다는
문명 이전의 침묵, 그리고 문명 이후의 책임을 묻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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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땅, 말 없는 진실
“나는 땅 아래 귀를 댄다”는 첫 구절은
윤동주의 **‘하늘을 우러러’**가 아니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시인의 겸허’**다.
이 시인은 하늘보다 땅에서 진실을 듣고자 하며,
그 진실은 말 없는 전율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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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의 기억 vs 인간의 기억
우리는 1953년의 휴전을 기억하지만,
지층은 대륙이 나뉘기 전, 고요한 하나의 기억을 간직한다.
이 시는 분단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 폭력이며,
자연의 시간 속에서는 의미 없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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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침묵, 지층 속으로
“지층은 부끄러움으로 움직였다”는 구절은
윤동주의 참회록적 시선이 자연 속으로 재현된 장면이다.
윤동주가 눈을 감지 못했던 부끄러움은
이제 지층의 진동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시가 아닌 양심의 지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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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문장
〈지층의 침묵〉은 윤동주의 시정신을 박성진 시인이 지구의 지층으로 확장시킨 시이다. 이 시는 분단을 단지 정치적 비극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자연의 고요를 무너뜨린 결과로 성찰한다. 침묵은 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하여 이 시는, 땅속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통일의 예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