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핀슨관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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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슨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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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시인의 기숙사,
그 오래된 벽돌 아래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 줄기 숨결이 있다.
그 방,
창호지에 스미던 바람의 결,
울림 없는 웃음,
꿈도 조용히 무릎 꿇던 날들.
타임머신처럼,
나는 연희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윤동주의 옆자리에 앉는다.
시가 아니면 살아낼 수 없던
그의 침묵을 닮아간다.
웃음도
활기도
없던 시대.
그 모든 부재를 품고
별을 헤며 버텨낸
청춘 하나.
하,
그립다.
정말로 그립다.
이 벽이 기억할까?
밤마다 시가 울던 소리,
종이 위에 묻어있던
그의 맑은 절망을.
하, 그립다.
시인 윤동주.
그를 안고 있는
이 기숙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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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윤동주의 시혼을 비추는 시간의 창 — 박성진 시인의 ‘핀슨관 앞에서’〉
문화평론가 박성진
박성진 시인의 「핀슨관 앞에서」는 단순한 장소시를 넘어, 윤동주라는 존재를 하나의 시간적 문학 유산으로 소환하는 기억의 시학이다. 이 시는 "기숙사"라는 정적인 공간을 통해, 윤동주의 정념과 침묵, 그리고 시대의 고통을 역동적 정서의 층위로 전개한다.
시인의 발걸음은 단순한 현재가 아닌 과거의 '연희의 시간 속'으로 향한다. 여기서 ‘타임머신’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장치적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윤동주 문학을 이해하려는 시인의 의지, 즉 그 내면으로 다가가는 한 문학인의 순례다. 특히 “시가 아니면 살아낼 수 없던 그의 침묵을 닮아간다”라는 구절은 윤동주의 「서시」와 「자화상」의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낸 메타포이다. 이 구절은 시가 곧 생존의 양식이었던 윤동주의 생을 응시하고 있다.
“하, 그립다.”는 반복은 감상의 언어를 넘어서 집단적 상실의 정조를 불러낸다. 윤동주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시간,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박성진 시인의 절절한 ‘호명’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시혼(詩魂)의 계승을 상징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 “이 벽이 기억할까?”는 물음처럼 보이나, 실은 기억의 선언문이다. 핀슨관의 벽돌 하나, 창틀 하나까지 윤동주의 시가 스며들어 있다는 역사적 감식(鑑識)의 시선은 문학의 현장성을 살아 있는 육체처럼 느끼게 한다.
박성진의 시는 윤동주의 '서정적 침묵'에 ‘현재의 목소리’를 더하며,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시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언어로 남아야 하는가?”
이 시는, 단지 시인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윤동주의 영혼을 다시 문학으로 되살리는 행위, 즉 시인이 시인을 불러내는 문학적 기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