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천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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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미소 — 마애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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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바람은 돌을 닮고
돌은 사람을 닮아
천년을 웃는 얼굴 하나 생겼다
누가 저 입꼬리 올렸는가
눈썹 사이 그윽한 틈새에
한민족의 슬픔이 담겼다
바람은 다시 불고
나는 무릎을 꿇는다
지혜는 고요에서 미소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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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론》
〈천년의 미소〉에 담긴 칸트적 사유와 미학적 여운
박성진 시인의 시 〈천년의 미소〉는 단순한 형상의 찬양을 넘어, 존재의 ‘시간성’과 ‘고요’에서 피어나는 너그러움의 철학을 깊이 담아낸 작품이다. 시의 첫 연에서 ‘바람 → 돌 → 사람’이라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조형물 간의 삼중 연결 구조는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언급한 ‘숭고’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형상 없는 감동, 그것이 곧 충고라면, 마애불의 미소는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도 말하고 있다.
“누가 저 입꼬리 올렸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물음, 조각가에 대한 경의, 그리고 더 나아가 민족적 아픔과 초월의 철학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엔 칸트가 말한 인간의 ‘실천이성’이 숨어 있다. 고통스러운 시대를 지나왔지만, 입꼬리는 하늘을 향해 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라고 한다. 이 행위는 종교적 복종이 아니라, 사유에 대한 경외다. 칸트의 철학에서 인간은 ‘도덕법칙’을 자기 안에서 느끼며 별처럼 반짝이는 ‘실천적 자유’를 실현한다. 이 시의 화자 또한, 마애불 앞에서 감동을 느끼되 그 감동을 지혜로 전환하는 존재, 곧 철학적 인간이다.
마애불의 미소는 무기력한 평온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품고, 고요를 넘고, 결국 사람을 닮아간다. 시인은 이 미소를 천년의 바람과 결합시키며, 시 끝에 다다를수록 **‘말 없는 위로’**로 우리를 이끈다.
그 여운은 시가 끝나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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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의 여운
천년의 바람을 맞은 돌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 우리는 우리를 본다.
그리고 무릎 꿇는 자리에서,
다시 ‘사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