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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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정병욱 두 분 앞에 헌정하는 박성진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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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현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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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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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헌정시조
어둠 속 등불처럼
숨죽이며 시를 써도
이름조차 죄처럼 삼킨
그날의 시인 옆에
문우 한 사람 있었으니
정병욱, 그대였다
침묵은 넘치도록
벗은 끝내 지켰도다
종이에 묻은 별빛을
부끄러움 삼아 남긴
그 한 권의 시집 위로
백 년의 시가 흐른다
허물은 덮지 못해
서로를 더 아파하고
시보다 먼저 사람을
살피던 그대가 있어
윤동주가 윤동주로
남을 수 있었도다
친구를 넘은 이름
문학의 지붕이 되어
말 없는 시대를 견딘
벗 같은 사람이 그립다
아, 정병욱 그대여
하, 그립다 하 그립다
그대 같은 친구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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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윤동주가 윤동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 — 정병욱의 손길》
이 시조는 한국문학사에서 시인과 문우,
그리고 유산과 기억이 어떻게 한 생을 완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헌정이다.
박성진 시인은 시조라는 전통 형식 속에
윤동주의 침묵과 정병욱의 책임을 담았다.
1연에서 ‘이름조차 죄처럼 삼킨’ 날의 시인 옆에
‘문우 한 사람 있었다’는 구절은,
한국 문학의 가장 절제된 찬사다.
2연에서 '종이에 묻은 별빛'이란 표현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를 간직했던 정병욱의 손길을 의미하며,
그 시집 위에 ‘백 년의 시가 흐른다’는 마지막 행은
윤동주가 죽은 이후에도
정병욱의 헌신으로 시인이 살아남았음을 노래한 문장이다.
3연은 부끄러움을 덮지 못했던 시대,
즉 순결함조차 죄로 느껴졌던 시절의 고통을 함축하면서도,
“시보다 먼저 사람을 살피던 그대가 있어”라는 표현으로
시인의 윤리를 실현시킨 문우의 역할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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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윤동주와 정병욱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 동문이 아니라
시와 기억의 동행,
죽은 시인을 세상에 다시 걷게 한 우정이었다.
정병욱이 없었다면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원형 그대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며,
윤동주라는 이름도 지금처럼 깊은 별빛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2025년, 윤동주 80주기를 맞는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이렇게 외쳐야 한다.
윤동주 시인을 윤동주로 만든 것은,
그의 시와 생, 그리고 그 생을 지킨 한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 이름, 정병욱.
하, 그립다. 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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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생 프로필
이름: 정병욱 (鄭炳昱)
출생: 1911년 12월 2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사망: 1982년 7월 28일
학력: 연희전문학교 문과, 일본 도쿄대 문학부 국문학과
직업: 국문학자, 서울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회 회장 등 역임
업적:
윤동주의 자필 시 원고 31편을 보존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 주도
윤동주 문학 유산의 보존자이자 실질적 편집 책임자
저서: 《국문학사》, 《이 조시가의 연구》 등
기념: 보성군 벌교에 ‘정병욱 문학관’ 개관 (2023년)
의의: 한국문학사의 시적 유산을 지킨 가장 조용한 등불